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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일에 대해 행위자가 자신이냐, 남이냐에 따라 평가를 달리한다는 뜻의 '내로남불'을 다룬 종합편성 채널 프로그램의 한 장면. 정치권에서 처음 거론된 '내로남불'은 이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널리 쓰이고 있다. 사진=jtbc 캡처 |
'내로남불'이라는 사자성어(?)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 다시금 정치권 유행어로 등장했다.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로 남의 잘못은 탓하면서 자신의 과오는 모른 척하는 행태를 꼬집는, 귀에 착 들러붙는 말이다.
이 말은 '명대변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박희태 전 국회 의장의 과거 히트작이다. 검찰 출신의 박 전 의장은 '폭탄주'를 우리 사회에 정착(?)시킨 인물로도 유명하다.
정치인의 한마디는 그날그날 큰 뉴스거리이다. 이 중 촌철살인, 함축된 오묘한 진리 등으로 오랫동안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정치인의 '말말말'을 모아봤다.
◆내로남불=박희태, 1996년 6월12일 국회 본회의 의사진행 발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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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폭탄주'를 유행시킨 장본인인 박희태 전 국회 의장은 '내로남불'이라는 희대의 히트작도 만들었다. |
내로남불은 박 전 의장이 유행시키기 이전에 이문열의 단편소설 '구로 아리랑'에도 똑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등장했다. 이어 박 전 의장의 입을 거쳐 신문 제목으로 뽑히면서 희대의 유행어가 됐다.
1996년 5월29일 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은 139석을 얻어 선전했으나 과반의석 획득에 실패 '여소야대'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여당은 무소속과 민주당, 자유민주연합 소속 의원들을 잇달아 영입해 원내 과반을 달성했다.
이를 놓고 야당이 '의원 빼가기'를 했다며 맹공을 펼치자 1996년 6월12일 국회 본회의 때 당시 신한국당 박희태 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가"라며 야당을 공박했다. 의원 빼가기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공공연하게 이뤄졌다는 게 발언의 요지이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 '하나회' 숙청 등에 따른 저항에 일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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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은 상황에 들어맞고 시대를 위로하는, 훗날까지 기억되는 명언을 여럿 남겼다. |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생전 '정치 9단'으로 불릴 만큼 정무적 감각이 빼어났다. 특히 무릎을 탁 칠만큼 상황에 적절한 말을 쉽게 표현해 좌중을 압도했다.
그 중 하나가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이다.
1993년 2월 취임한 김 전 대통령은 임기 첫해 하늘을 찌를듯한 인기를 무기로 과거 상상도 못했던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등록, 군부 사조직 '하나회' 숙청 등이 그것이다. 국민 생활과 권력 역학구도를 뒤흔들어 놓은 대변혁을 추진, '무모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의 혁명적 조치를 취했다.
그 중 군부의 가장 큰 인맥인 하나회를 제거한, 군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군인 출신인 전임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과거 이끌었던 하나회에 대한 숙청 결과 장군 3명 중 1명이 옷을 벗겼다고 할 만큼 엄청난 대 사정이었다.
군부의 저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자 김 전 대통령은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릴 수밖에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저항이나 반대 등이 있어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고, 해야만 되는 사명과 숙명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지난해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는 '촛불 정국'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요구 국면을 맞아 "개가 짖어도 '탄핵열차'는 달린다"며 YS의 발언을 인용했다.
최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도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며 친박(친박근혜계) 청산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김영삼, 유신 독재에 항거
YS가 남긴 어록 중 빠질 수 없는 게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3선 개헌에 이어 유신헌법 선포로 독재체재를 굳히려 한 박정희 정권이 강압적 수단으로 국민의 입과 행동을 막으려 했던 1972년 즈음 탄생했다. '결국 자유는 오고야 만다'는 뜻을 담은 담아 YS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을 향해 신념을 갖고 반독재 투쟁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발언이었다.
언론과 양심, 정치적 자유의 가치를 이보다 쉽게 표현한 말을 찾기 힘들 정도로 깊은 울림이 있었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검사와의 대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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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 2주일 즈음인 지난 2013년 3월9일 열린 '검사와의 대화' 장면. 노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젊은 검사의 도전적 질문에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라고 대꾸하며 특유의 투사기질을 발휘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탈한 서민 이미지와 투사의 풍모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잘못된 일이라는 판단이 서면 장소와 체면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 노 전 대통령의 기질을 잘 드러낸 말이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이다.
기득권층의 특권의식을 깨야만 나라가 바른 방향으로 나갈 있다는 신념을 보였던 노 전 대통령은 콘크리트와 같은 엘리트 의식으로 무장한 검찰을 개혁 대상 1호로 삼았다.
이에 검찰도 음으로, 양으로 강하게 저항했다.
이런 가운데 2003년 3월9일 대통령과 검사 10명이 나란히 앉아 사전 각본 없이 토론을 펼치는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졌다. TV로 생중계된 '대통령과 검사의 대화'는 토론 프로그램이었지만 27.3%라는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
토론 도중 37세의 평검사가 "대통령께서 취임 전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청탁 전화를 한 적이 있다"며 "그때 왜 전화하셨느냐"고 묻는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내로남불'을 따지는 모양새를 띠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라며 격하게 반응했다. "한번 해 보자는 거냐"는 뜻으로 그의 열정적 기질을 그대로 드러냈다. 청탁전화는 아니었다는 게 이어진 노 전 대통령의 설명이다.
이후 이 말은 '계급장 때고 한번 붙자는 것이냐'라는 뜻으로 널리 통용됐다.
◆'사사오입'으로 통과=1954년 11월29일 최순주 국회 부의장, 종신 대통령 개헌안 통과를 알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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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11 29일 최순주 국회 부의장(오른쪽)이 '사사오입'으로 개헌안이 통과됐음을 알리자 당시 무소속 이철승 의원이 "이게 무슨 짓이냐"며 최 부의장의 멱살을 잡고 있다. |
사사오입(四捨五入=소수점 이하 반올림)은 수학 용어이지만 정치 용어로 더 유명하다.
초등학생들까지 뜻은 몰라도 '사사오입'이라고 외치고 다닌 때는 1954년 11월29일 이후였다. 당시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당 소속 최순주 국회 부의장이 "수학자들 말에 따르면 사사오입을 하면 통과됩니다"라며 "계산 착오를 시정하고 가결됐음을 알립니다"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당시 자유당은 이승만을 종신 대통령으로 세우기 위해 대통령 2회 연임을 제한했던 헌법을 고치려 들었다.
대통령 연임 제한을 없앤 헌법 개정안은 1954년 11월27일 국회 표결에 부쳐졌다. 재적의원 203명 중 202명이 투표에 참가해 가결 135, 부결 6, 기권 7표로 개헌 정족수(재적의원 2/3인 136표)에 한표 부족했다.
이에 애초 최 부의장은 '부결'이라며 의사봉을 두들겼다.
이내 자유당은 말을 바꿨다. "4칙연산에 따르면 203명의 2/3은 135.33333···으로 사사오입 규정에 따라 135명이 맞다"는 억지 논리를 폈다.
자유당은 저명한 수학 교수의 '유권해석'까지 곁들여 11월29일 황성주 의원 명의로 가결 성명을 발표했으며, 최 부회장은 "27일의 부결 발표는 착오였다"며 통과됐음을 알렸다.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 연장만 꾀하던 비리의 온상 자유당이 남긴 희대의 사자성어였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김대중 전 대통령 일생을 한마디로 줄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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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뛰어난 대중연설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생에 걸쳐 '행동하는 양심'을 역설했다. |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일생 동안 독재와 억압에 맞섰던 대표적 정치인이다. 대중연설의 대가로, 듣는 이들의 피를 끓게 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DJ가 남긴 명언 중 가장 유명한 말은 '행동하는 양심'으로, 박정희 정권과 맞설 때부터 널리 썼다.
DJ는 서거 두달 전인 2009년 6월11일 6·15 선언 9주년 기념식장에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며 다시 한번 이 말을 올려 좌중의 각성을 촉구했다.
◆배신의 정치=박근혜 전 대통령, 2015년 6월25일 국무회의 석상서 당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겨냥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버지의 서거 여파로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증후군)가 있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를 끼고 돈 것도, 극히 일부의 측근의 말만 들은 것도 배신당할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대전은요(한나라당 대표로 있던 2006년 지방선거 지원유세 도중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고 깨어나자 한 첫마디, 이 말이 알려지자 열세였던 대전시장 선거가 뒤집어졌다)", "병 걸리셨어요?(2011년 9월 '안철수 열풍'에 대한 껄끄러운 질문이 이어지자)" 등 화제 또는 논란을 빚었던 몇몇 발언을 남겼지만 가장 유명한 말은 역시 '배신의 정치'이다.
자신의 비서실장까지 지냈던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015년 6월 국회 정당대표 연설 때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이다"라는 등 정부 정책과 어긋난 발언을 쏟아내자 같은달 25일 국무회의 때 '배신의 정치'라는 단어를 등장시켰다.
박 전 대통령은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을 해주셔야 할 것입니다"라며 특유의 책 읽는 어조임에도 강한 분개를 나타냈다.
◆나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 주세요=1987년 13대 대선서 노태우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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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은 13대 대선에서 '보통사람입니다', ' 믿어 주세요'를 외치고 다녔다. |
13대 노태우 대통령은 달변가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한 말 중 가장 널리 퍼진 유행어가 "나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 주세요"이다. 1987년 13대 대선 후보 당시 입에 달고 다녔던 말이다.
군부 출신 독재자가 아닌 서민의 대변자임을 강조한 발언인데, 탄생 배경은 이렇다. 노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정권 당시 87년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대표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담은 6·29 선언을 발표했는데, 이를 두고 대학가 등을 중심으로 '속이고 선언'이라는 풍자가 널리 퍼지자 방어 차원에서 내건 선거 슬로건이었다.
이후 시중에선 '보통사람' '믿어 주세요'가 반의어, 풍자적으로 회자됐으나 그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이승만 대통령 1945년 귀국 때와 1950년 평양 탈환 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라는 말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미국 유학 시절에 익힌 용어로 그를 대표하는 말 중 하나이다.
미국서 돌아온 이 전 대통령은 1945년 10월17일 '환국 환영식'에서 좌우분열을 없애고 합심해 나라를 발전시키자며 이렇게 외쳤다.
이어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27일 평양 탈환을 환영하는 시민대회에서도 특유의 떨리면서도 느릿한 어조로 되풀이했다.
이후 이 전 대통령을 다룬 드라마와 방송 프로그램에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말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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