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은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고운기 선생 관련 사진에 10월의 독립운동가인 채상덕 선생 관련된 참의부 대원들 사진을 게시했다. 1개월 가까이 잘못된 사진이 홈페이지에 걸려있는 것이다.
![]() |
9월의 독립운동가 고운기 선생 관련 사진에 게시된 참의부 대원들 사진. |
![]() |
10월의 독립운동가 채상덕 선생 관련 사진에 동일한 참의부 대원들 사진이 게시됐다. |
1907년 함경남도 문천에서 태어난 고운기 선생(본명 공진원) 선생은 참의부와 관련이 없다. 1931년 한국독립군 제6중대장으로 중국의 반만항일군과 연합해 대일항전을 전개했으며 1932년 서란현전투에서 일본군 1개 분대를 전멸시키는 전과를 거뒀다. 1937년 지청천을 중심으로 한 조선혁명당에 참여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관계를 맺었다. 1940년 충칭에서 광복군이 창설되자 제2지대장에 임명됐다. 고 선생은 1942년 임시의정원으로 활동하다 병을 얻어 1943년 37세로 운명했다. 정부는 1963년 고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 게시된 9월의 독립운동가 고운기 선생 이미지 |
한편 일제강점하 만주지역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던 채상덕(1862~1925) 선생이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고 국가보훈처가 이날 밝혔다.
선생은 1895년 의병활동에 참여했고, 1910년대 남만주로 망명해 1922년 대한통군부 총장에 선임됐다. 1923년 대한의군부를 조직해 총재를 역임했고, 같은 해 여름 남만주 화뎬(樺甸)현에서 독립운동 지도자 58명과 함께 만주 독립운동계의 통일과 진로에 대해 회의를 했다.
선생은 1924년 성립된 참의부에 자신의 부하들을 가입시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1925년 3월 밀정의 밀고로 일경이 참의부 회의 장소를 기습 공격해 다수의 전사자와 중상자가 발생하게 되자 비통에 빠진 선생은 제자 이수홍에게 독립군이 되어 자신의 의지를 이어 달라고 당부한 뒤 “부하가 다 죽었으니 나 혼자 살아있을 면목이 어디 있겠느냐”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해 순국했다. 정부는 1995년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