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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세계화와 한자문화권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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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11 20:57:13 수정 : 2017-08-11 23: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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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 세계화시대 / 타언어권 원천배제된 영어권 중심의 세계관 / 자칫 단선적 쏠림 우려 수능 절대평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절대평가의 첫 번째 대상은 영어이다. 올해 수능은 영어가 처음 절대평가로 치러진다. 영어 능력이 세계화 시대에 가진 중요성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영어 사교육이 엄청나고 이것이 가진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를 나누고 있으니 이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이에 대해 한편에서는 영어절대평가가 영어에 쏠린 사교육과 파생되는 불평등을 줄여줄 것이라 기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교육 경감 효과는 미미할 것이고 오히려 사교육의 혜택을 듬뿍 받은 소수와 영어능력이 저하된 대다수의 불평등을 고착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영어절대평가의 득실을 논할 의도는 없다. 필자가 영어절대평가 논란에서 흥미로워하는 것은 영어절대평가 찬반 양측 모두가 자유롭지 못한 영어 중심의 세계화 인식이다.

전인한 서울시립대 교수·영문학
나는 오래전에 읽은 책을 다시 들춰보는 습관이 있다. 대학시절 읽었던 책 위에 보이는 젊은 시절의 메모를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거니와 당시의 지식체계와 현재의 지식체계를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대학교 1학년 때 산 전집을 살펴보다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점을 발견하게 됐다.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하더라도 책의 내용은 세로로 돼 있었고, 명사는 대부분 한자로 쓰여 있었다는 점이다. 즉 영어가 오늘날 우리 삶에 깊게 침투하면서 우리는 한자와 한자문화권의 유산을 망각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발견한 것은 한글로 쓰면 뜻이 애매모호한 단어에 예전에는 한자를 병기했는데 요즘에는 영어를 병기하고 있다는 점이고, 이제 이러한 흐름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층들은 유산(遺産)보다 유산(inheritance)의 표기가 더 편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할 것이다.

사실 한국, 중국, 일본, 북베트남은 한자문화권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한자는 서구인에게 라틴어가 그러했듯이 한자문화권에서는 지식인의 국제어였고 한자로 연결된 유교문화의 과거제도·제사·조상숭배와 같이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로 인해 한국, 중국, 일본, 북베트남의 지식인 네 명이 만나면 서로 말은 안 통해도 한자를 통해 편히 필담을 나눌 수 있었다. 동북아시아 3개국과 동남아시아 1개국 사람들은 한자문화를 통해 공통의 사고체계를 공유하고 있었던지라 한자 중심의 세계화를 이미 이룩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한자를 버렸다. 아울러 한자문화권에서 이미 확보하고 있던 한자문화권 차원의 세계화도 버렸다. 한자는 더 이상 주위에서 보이지 않고 중·고등학교에서도 한자를 제대로 교육하지 않는다. 중국어나 일본어를 배울 때 도움이 되고, 일본이나 대만을 여행하면 간판 정도는 쉽게 읽을 수 있었던 한자 지식은 50대가 넘은 장년층이나 가지고 있는 예전의 지식이 돼 버렸다. 이래도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미 전 지구적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세계화의 중심 언어인 영어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세계화의 방향은 영어와 영어권 문화로만 향하고 있지 않다. 영어로의 구심력과 함께 영어로부터의 원심력도 아울러 작동하고 있다. 진정한 세계화는 영어와 영어권 문화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다른 언어와 다른 언어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교섭될 때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국어나 한자, 그리고 다른 언어에 대한 고민이 동반되지 않는 수능 영어절대평가에 대한 논란은 씁쓸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뿌리는 망각한 채 세계화를 단선적으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나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에 정답은 없기에 영어절대평가도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을 것이다. 다만 바라는 바 영어절대평가에 대한 논란이 우리가 세계화를 영어 중심으로만 생각해도 되는가라는 의문을 불러온다면 생각지 못했던 이득이 있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전인한 서울시립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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