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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 신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0일 오후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계 원로 및 기관장과의 정책간담회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박 본부장은 이날 업무 수행 의지를 밝히면서도 황우석 사태 관련 자신의 과오를 11년만에 사죄했다. 하지만 전날 200여명이 참여했던 박 본부장 퇴진을 촉구하는 과학단체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의 서명 운동에는 이날 최종적으로 1851명이 가세했다.
◆박 본부장, “제의받았을 때 흔쾌히 수락했다”
지난 7일 임명 직후부터 과학계의 거센 퇴진 압박을 받아 온 박 본부장은 이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과학기술계 원로, 기관장 등이 참석한 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대과연) 간담회에서 입장을 밝혔다. “영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막중한 부담을 느낀다”며 말 문을 연 박 본부장은 “일할 기회를 주신다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일로써 보답하고 싶다”며 사퇴를 거부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연구 조작 사건 당시 과학정책 당국자이자 주요 연루자로서 사죄 등 어떠한 입장 표명도 하지 않아 지탄 받아온 것에 대해 박 본부장은 이날에야 “황우석 사건 당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매맞는 것으로 대신하고, 이후 사죄하고 싶었지만 기회를 만들지 못해 너무 답답했다”며 “국민께 실망과 충격을 주고 과학기술인들에게 절망을 안겨준 것에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하며 이 자리를 빌어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박 본부장은 이처럼 사죄를 했으나 당시 사태 원인 및 자신의 책임에 대해선 “내게 연구비를 설계하거나 배분하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다”며 “당시 국민적 여론이 많이 반영된 결정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신문기사에 1면 톱에 ‘왜 (황 전 교수를)지원 안 하냐’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고도 말했다. 황 전 교수에 예산 집중이 이뤄졌던 것을 국민 여론에 따른 탓으로 돌린 것이다.
박 본부장은 “(청와대로부터)제의를 받았을때 꿈이 있어서 흔쾌히 수락했다”고 말했다. 논란을 예상하고도 임명을 강행한 청와대나, 박 본부장 모두 과학계의 반발은 중요하게 염두에 두지 않은 셈이다. 현장에선 젊은 연구자들이 “사퇴하라”고 외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단상에 앉은 과학계 원로와 기관장 등은 20여조원의 국가 연구개발 자금 통제권을 쥔 신임 본부장에게 “잘하리라 믿는다” 등의 덕담을 건넸다.
◆과학계,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다.”
소속 회원 대상으로만 박 본부장 퇴임 촉구 서명을 받아 지난 9일 이를 공개한 과학인단체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잇딴 서명 동참 요청에 이날 오후 2시까지 추가로 공개 서명을 받았다. ESC는 그 결과 서명 참여자가 230여명에서 1851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과학계의 박 본부장 ‘비토’ 여론이 이처럼 갈수록 거세지는 배경에는 박 본부장 당사자에 대한 비판 여론에 문재인 정부 과학기술정책·인사에 대한 불신이 더해진 결과다. 과학계 관계자는 “이쪽 심정은 거친 비유지만 딱 성폭행 전력이 있는 자를 여성가족부 요직에 앉힌 꼴”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인문사회분야는 잘 알아도 이공계쪽에는 ‘아킬레스건(약점)’이 있다는 것이 이공계 분위기”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많은 기대를 가졌던 과학계가 기업인 출신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자리에 앉을 때 한차례 실망한 후 이번 박 본부장 인사로 “과학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정말 낮구나”라며 돌아섰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일단 박 본부장 입장 표명 이후 여론이 어떻게 흐를지 관망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앞서 특정 인사들이 논란이 됐을때 적어도 청문회까지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게 청와대 입장이었다”며 “제기된 의혹을 박 본부장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도 하고 나서 국민의 여론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일각에서는 박 본부장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을 만나 박 본부장 거취에 대해 “본인이 판단할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박성준·김수미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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