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주식시장의 ‘광기’…‘벤처 열풍’과 꼭 닮은 ‘튤립 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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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17세기초 이곳에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탄생했다. 또 증권 거래도 활발하게 이뤄져 세계 최초의 투기로 유명한 `튤립 광풍`을 낳기도 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또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돈’과 ‘경제’란 단어에 목을 매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한낱 종이쪽지에 지배당하고, 그 종이쪽지에 사회 전체가 얽매여 신음하는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 세계파이낸스는 [안재성의 金錢史] 시리즈를 통해 돈과 금융의 역사에 관해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그러나 주식회사가 만들어지면서 사업가는 회사의 주식을 나눠주는 대가로 투자자를 모집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사업의 리스크를 획기적으로 줄여줬다.
사업에 실패할 경우 알거지가 되는 것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일이다. 빚을 지는 것은 더 무섭다. 회사가 쓰러져도 빚은 평생 사주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를 받은 돈은 빚이 아니므로 설령 사업이 망해도 갚을 의무가 없다. 덕분에 홀가분해진 사주는 더 공격적으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거나 기존 사업을 확장할 수 있게 됐다.
주식을 사는 투자자 입장에서도 이는 나쁘지 않은 모델이다. 사업 실패의 리스크를 같이 지지만 대신 사업 성공의 수익도 같이 누릴 수 있다. 나아가 주주로서 일정 부분 경영에 참여할 수도 있다.
즉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투자 모델인 셈이다. 이는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은행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원하는 투자자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주식회사의 유행으로 증권거래소가 만들어지고 주식 거래를 전문적으로 중개하는 증권사가 생겨나면서 증권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까지 형성됐다. 새로운 시장은 곧 새로운 돈벌이를 의미하고 그만큼 경제의 발전을 이끌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개인적으로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 주가의 등락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만큼 증권시장은 우리의 피부에 와 닿고 있다.
이처럼 거대한 변화와 발전을 끌어낸 주식, 그 주식의 개념을 만들어 낸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는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였다. 그리고 주식이 특성이 그러하듯 주식회사가 생겨난 배경 역시 ‘한탕의 꿈’과 무거운 리스크가 공존하는 ‘대항해 시대’의 도래였다.
◇동인도 회사, 주식 매각으로 동방 개척 자금 모집
‘대항해 시대’는 유럽인들이 지중해를 떠나 대서양으로, 그리고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진출하면서 광활한 변경과 통상 항로를 개척한 시대를 뜻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서인도 제도를 발견하면서 촉발된 ‘대항해 시대’는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이르는 항로를 개척하면서 절정기로 돌입했다.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가면 신대륙을 개척하고 금은보화를 얻을 수 있다.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로 가면 당대 유럽에서 가장 인기 높고 비싼 상품인 향신료를 수입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성공만 하면 대박을 기대할 수 있는 사업이다. 대신 실패 위험도 높았다. 항해의 위험은 항해 거리에 비례한다. 나무로 만든 범선을 타고 몇 개월이나 되는 항해를 버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해난사고를 당해 배가 침몰하거나 해적을 만나 선적 물품 전부를 털리는 일은 흔했다.
특히 당시에도 북아프리카에서 맹위를 떨치던 이슬람 해적들은 신대륙에서 오는 스페인 선박과 아프리카를 통해 오는 포르투갈 선박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그만큼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서였다.
때문에 막대한 규모인 초기 투자 비용을 마련하는 게 힘들었다. 너무 리스크가 커서 돈을 빌려줄 사람을 구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이 시기는 아직 은행의 대출이 활성화되기 전이지만 근현대의 은행이라도 이 정도로 위험한 사업에 쉽게 대출해주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초기의 신대륙과 동방 항로에는 국고를 탕진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국왕만이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대항해 시대’의 주인공이 된 것은 그런 이유였다.
다만 이들의 전성기는 네덜란드에 동인도 회사가 만들어지면서 끝난다. 서기 1602년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 설립된 동인도 회사는 세계 최초로 주식회사의 개념을 도입했다.
어차피 대출을 받기도 힘든 상황이라 리스크를 분산할 겸 주식을 나눠주겠다며 투자자를 모집한 것이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정관 10조에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회사의 주식을 살 수 있다"는 내용을 넣었다.
이 방식은 ‘하이 리턴’을 위해 ‘하이 리스크’를 감수할 의향이 있는 투자자들에게 먹혔다. 총 1143명이 주주로 참여해 367만4945길더의 투자금을 모집했다.
이 자금을 바탕으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적극적으로 동방의 시장을 개척했다. 바타비아(현 자카르타) 전진 기지로 삼아 인도와의 교역에 힘을 기울였다.
특히 실론 섬, 말라카 제도 등 향신료 생산지를 점령하면서 대성공을 거뒀다. 향신료 시장을 장악한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제치고 유럽 최고의 부국으로 떠오른다.
훗날 영국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그대로 흉내 낸 동인도 회사를 설립한다.
◇최초의 투기 ‘튤립 광풍’…탐욕과 혼돈의 증권시장
주식회사가 생기면서 주식을 거래하는 증권거래소도 탄생했다. 세계 최초로 근대적인 의미의 증권거래소는 1802년 런던에 개설됐지만, 17세기초 암스테르담에는 이미 사실상의 증권거래소가 존재했다. 성 올라프 성당과 카이저 거래소 등에서 주식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 시기 암스테르담에는 이미 주식 거래뿐 아니라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 거래가 활성화됐다. 리스크, 작전, 호가 등 현대에도 널리 쓰이는 증권 용어들이 모두 이곳에서 탄생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과거나 지금이나 증권시장의 특성은 비슷하다는 점이다. 즉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거품이 쉽게 형성됐으며 개인 투자자의 주머니를 노리는 투기 세력이 준동했다. 이들의 작전에 넘어가 전 재산을 날리는 투자자들도 흔했다.
그야말로 ‘탐욕과 혼돈의 장’이라 칭할 만 하다. 주식 매매로 돈을 벌고 싶다는 탐욕은 일반 시민뿐 아니라 점잖은 신사와 학자들도 유혹했다.
어떤 저명한 철학자는 주식에 큰 돈을 투자했다가 "어제밤 나의 평화는 불안으로, 나의 지식은 멍청함으로, 나의 평정심은 경박함으로, 나의 존경은 놀림거리로 변해버렸다"는 한탄을 남기기도 했다.
이 시기 암스테르담의 혼돈을 보여주는 좋은 예는 세계 최초의 투기로 유명한 ‘튤립 광풍’이다.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면서 부국이 된 네덜란드에 1630년대 들어 튤립 키우기 붐이 일기 시작했다. 당시 튤립은 진귀한 꽃이었기에 구하려면 돈이 많이 들었다. 때문에 집의 정원에 만발한, 가지각색의 예쁜 튤립이 부유함의 상징으로 자리잡으면서 귀족과 부자들은 앞다퉈 튤립을 구매했다.
현대의 명품이 그러하듯 일단 그 상품을 가지는 것이 부유함과 고급스러움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면 실제 가치 이상으로 가격이 치솟는다. 이 시기 네덜란드에서도 튤립 가격이 나날이 올랐다.
그러자 자연히 튤립 시장에 거품이 끼고 참가자가 늘어났다. 잘 키운 튤립을 부자에게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돌자 전문 상인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뛰어들었다. 심지어 날품노동자, 하녀 등 최하층 서민들까지 튤립 재배에 나설 정도였다.
1635년 프랑스 귀족들도 튤립을 구매하기 시작하자 튤립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구쳤다. 1636년 한 해에만 튤립 가격이 60배 가까이 상승했다. 심지어 다 키운 튤립뿐 아니라 튤립 구근도 비싸게 거래됐다.
1637년 4월에는 튤립 구근 한 뿌리의 가격이 무려 암스테르담의 고급 주택과 맞먹을 정도였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이런 ‘미친 시장’이 유지될 리 없다. 다들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나보다 더한 바보가 나타날 것’이란 헛된 희망을 품고 사람들은 튤립을 구매했다.
그리고 당연한 순서로 파국이 찾아왔다. 어떤 부자, 심지어 왕족이라 해도 그 값을 치르고는 튤립을 사지 않을 것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튤립 가격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고급 저택 한 채와 맞먹던 튤립 가격이 불과 일주일만에 양파 가격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 때까지 튤립을 들고 있던 사람들은 망연자실한 채 알거지가 돼야 했다.
놀라운 점은 ‘투기의 끝은 파멸’이란 역사적이 예가 수두룩한 데도 증권시장 등에서 투기는 멈추질 않는다는 점이다. 21세기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벤처 열풍’도 ‘튤립 광풍’과 비슷했다.
매출로 연결될지 증명되지 않는 신기술을 내세운 벤처기업은 물론 “보물선을 탐색한다”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사업을 내세운 벤처기업의 주식까지도 사람들은 비싼 가격에 샀다. 그리고 얼마 후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나보다 더 멍청한 바보’에 대한 기대감은 과거부터 현대까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세계파이낸스>세계파이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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