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밀착취재] "어느 별에서 왔니?" 구제옷에 숨겨진 비밀

입력 : 2017-05-28 09:10:00 수정 : 2017-05-27 17:50:59

인쇄 메일 url 공유 - +

지난 2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에 위치한 구제의류 매장의 모습

“유행은 돌고 옷도 돌고 돈다”

청재킷, 항공점퍼 등 과거 유행했던 일명 빈티지(vintage) 패션을 찾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 빈티지란 용어는 본래 연호가 붙은 명품 ‘빈티지 와인’에서부터 유래했는데 근래에는 오래됐어도 가치가 있는 옷이나 패션을 지칭하는 ‘패션용어’가 됐다.
 
특히 과거에 제작된 구제(舊製) 옷은 빈티지 패션의 주축이 된다. 최근 3개월 내 서울 홍대입구역(이하 홍대) 주변에만 두 곳의 ‘구제매장’이 새로 생길 정도로 구제 의류 붐이 일고 있다. 홍대인근에만 20곳이 넘는 구제매장이 성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4일 홍대의 한 구제매장 직원은 ‘빈티지 패션’의 인기에 대해 힙합 가수를 다룬 방송이 많아진 이유를 들었다. 그는 “올드스쿨 패션이라고 해서 최근 방송된 ‘고등래퍼’나 ‘쇼미더머니’같은 프로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면서 “어린 친구들이 빈티지 패션을 찾으러 자주 온다”고 전했다. 이어 몇 개의 옷을 들어 보이며 어느 것은 1960년대 제작된 옷, 어느 것은 20년 된 청바지라고 자랑을 이어갔다.
 
빈티지 스타일을 즐겨입는 힙합 가수들. 구제 옷을 입거나 찾는 모습이 최근 TV에 자주 비춰지고 있다. (왼쪽 위부터 양홍원, 서출구, 아이언, 정형돈과 지드래곤) SNS 또는 방송화면 캡처.
◆구제를 찾는 이유

구제매장에서 옷을 고르던 성민준(24)씨는 구제의류의 독특함에 흠뻑 빠져 있었다. 성씨는 “요즘 유행하는 한국 옷들은 천편일률(千篇一律)적으로 길거나 크기 때문에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몇몇 제품을 가리키며 “이런 옷들은 하나밖에 없는 옷들이라 개성을 뽐낼 수 있고 청바지의 경우 손에 탄 느낌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구제제품에서 나는 탈취제 냄새(?)가 좋다며 옷을 코에 대고 숨을 들이켰다.

‘슈퍼맨’이나 ‘배트맨’이 그려진 티셔츠를 찾고 있던 임건(33)씨는 좋은 물건을 손에 넣었다는 신조어 ‘득템’을 들어 구제의류는 ‘득템의 재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평소에 오래된 제품을 좋아한다면서 가격이 싸기도 하고 과거 품절된 제품을 다시 살 수 있는 점을 구제의류의 장점으로 꼽았다.

한 홍대 구제매장 사장은 최근 복각 밀리터리 의류도 빈티지 인기에 한몫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복각(覆刻)이란 ‘원형과 비슷한 제품을 다시 만든다’는 뜻인데 과거 유럽이나 미국 군복 등이 빈티지 스타일로 재생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몇몇 가죽 밀리터리 재킷의 경우 20년이 넘었다며 “가죽은 100년이 넘어도 끄떡없다”고 구제 의류를 소개했다.
 
서울 광장시장 구제의류시장의 모습.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구제의류가 줄지어 있다.

◆구제 어느 별에서 왔니?

그렇다면 1960년대 제작된 옷, 20년이 넘은 가죽 재킷처럼 오래된 옷들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구제 숍의 직원들은 말을 아꼈다. 홍대 구제매장의 한 직원은 “사장이 나한테도 얘기를 안 해준다며 이 옷들이 어디서 오는 건 특급비밀(?)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구제 숍의 사장은 “자세히는 말 못 하는데 해외에 업자가 있다”고 귀띔해 줬다. 

구제의류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 구제의 메카라 불리는 서울 광장시장을 찾았다. 광장시장 건물 2층에는 수십개의 구제매장들이 미로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평일 오후 3시쯤이었지만 젊은 학생들이 희귀한 구제의류를 ‘득템’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옷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한 구제매장 사장은 “구제 의류의 출처는 영업 비밀이자 경쟁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디서 어떤 옷을 가져오는 지에 따라 찾는 손님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업체마다 다르겠지만 해외 수입업자, 의류수거함, 집하장 등 다양하다”고 말을 얼버무렸다. 

미국 로스엔젤레스(LA)의 구제 벼룩시장(왼쪽)과 미국 의류수거함. 출처=데일리 가제트

◆ 패션도 돌고 옷도 돈다

다른 구제매장 사장은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의류수거함’, ‘폐 의류 집하장’, ‘가짜제품’, ‘동묘 같은 구제 판매처’ 등이 대표적인 구제 의류의 출처라고 전했다. 특히 그는 경기도에 위치한 폐 의류 집하장을 들며 “새벽 5시만 되면 좋은 옷을 찾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파지가 재활용되는 것처럼 따로 버려지거나 의류수거함에 담긴 옷들이 집하장으로 오는데 전국에서 온 구제 상인들이 좋은 옷을 찾기 위해 새벽마다 이 곳에 모인다는 것이다. 그는 “사장들은 주로 ‘브랜드’, ‘스타일’을 보고 바로 옷을 고르는데 그게 바로 실력”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집하장마다 옷에 매겨진 가격은 다 비슷하다”면서 “구제매장 옷의 가격은 대부분 사장이 스스로 매기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해외에서 오는 옷들도 마찬가지인데 미국이나 일본의 의류수거함이나 플리마켓(벼룩시장)에 나온 옷들이 현지 구제 매장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다시 한국의 구제 매장으로 수입돼 오는 구조다. 

그는 “때론 광장시장에 일본 구제 상인들이 찾아와 일본산 옷을 사가는 경우도 있다”면서 “구제 의류는 전 세계를 돌고 돈다”고 말했다. 구제매장에서 안 팔리는 의류는 다시 집하장에 팔아 아프리카, 동남아 등 후진국으로 가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옷에 연식(?)이 쌓이고 유행도 돈다.

대부분의 구제매장 직원들은 ‘구제 의류를 사고 바로 세탁할 것’을 권했다. 한 구제매장 사장은 “우리가 세탁까지 해줄 수 없다”면서 “아무리 새것 같은 제품이라도 바로 입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전지현 '눈부신 등장'
  • 전지현 '눈부신 등장'
  • 츄 '상큼 하트'
  • 강지영 '우아한 미소'
  • 이나영 ‘수줍은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