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지에 휴지나 다른 이물질을 넣으시면 변기가 막힙니다. 휴지는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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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건물 화장실에 붙어있는 안내문. |
집 밖에서 화장실에 가면 흔히 볼수 있는 문구다. 소규모 식당이나 카페 등은 물론 극장이나 쇼핑몰 등 대형 빌딩의 화장실에서도 ‘휴지는 변기가 아닌 휴지통에 버려야한다’고 신신당부하는 안내문을 마주칠 수 있다. 이같은 안내문이 없더라도 많은 곳이 변기 옆에 휴지통을 비치해 ‘휴지는 쓰레기통에 버릴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이같은 풍경이 조금씩 사라질 전망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공중화장실 변기 옆 휴지통을 모두 없애기로 했다. 미관이나 위생상 좋지 않을 뿐더러 악취나 해충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21일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대변기 칸막이 안에 휴지통을 두지 않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이달 초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쾌적한 공중화장실 이용을 위해 대변기 칸막이 안에는 휴지통을 두지 않도록 하되, 여성용 대변기 칸막이 안에는 위생용품을 수거할 수 있는 수거함 등을 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이 알려지자 ‘보기 안좋았는데 잘됐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화장실이 막혀서 더 지저분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실제 많은 이들이 휴지를 변기에 버리면 안된다고 생각해 가정집에서도 화장실에 휴지통을 놓고 사용한다. 하지만 해외에 나가보면 변기 옆에 휴지통이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놀란 점으로 변기 옆에 휴지통이 있었다는 점을 꼽기도 한다.
유독 한국 휴지만 변기에 잘 녹지 않는 것일까? 행자부는 이같은 생각은 ‘오해’라고 말한다. 행자부 관계자는 “최근에는 대부분 물에 잘 풀리는 화장지를 사용하므로 휴지 때문에 변기가 막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수압 등 여러 요인 때문에 변기가 막힐 수는 있지만, 휴지를 넣기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이 ‘휴지는 변기에 버리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수십년 전 질 낮은 휴지를 사용하던 때의 습관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1988년 ‘88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재래식 변기를 양변기로 바꾸는 화장실 개선 사업을 시작했는데, 당시만해도 화장실에서 신문지나 질이 낮은 휴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변기가 자주 막혔다. 이때문에 변기 옆에 휴지통을 설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30여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휴지의 질이 좋아졌고,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휴지는 대부분 물에 잘 녹아 변기가 막힐 우려가 없다. 최근에는 변기에 버릴 수 있는 물티슈까지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변기에 휴지를 넣으면 안된다’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면서 변기 옆에 휴지통을 놓는 것이 관습이 됐다. 정부는 공중화장실부터 변기 옆 휴지통을 없애면 이같은 인식도 점차 바뀔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직장인 이모(34·여)씨는 “어릴때부터 집 화장실에 휴지통이 없어서 휴지는 항상 변기에 버렸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며 “바깥에서 화장실 휴지통을 볼때마다 더럽다는 생각이 드는데 마치 변기에 넣으면 큰일난다는 듯한 안내문이 많아서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주부 손모(38·여)씨도 “여자화장실 변기 옆 휴지통에 몰래카메라를 숨겼다가 잡힌 사람이 있다는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변기 옆 휴지통은 없어졌으면 좋겠다”며 “다만 아이 기저귀를 갈고 나서 등 휴지통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 화장실 입구 쪽에 큰 휴지통은 꼭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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