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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가뜩이나 힘든데…" 취준생 두 번 울리는 취업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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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06 16:45:24 수정 : 2017-05-06 17: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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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당해보면 몰라요…” 불법 다단계 몸담은 100일의 기억 / “영화 만드는 회사예요. 연예인도 볼 수 있어요. 숙식제공하니까 오세요.”
지난해 8월 전남에 사는 박주현(20·여·가명)씨는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친해지고 싶다”, “일자리를 알아봐 주겠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를 받았다. 처음엔 영 이상한 사람인 듯 싶어 무시했지만, 두 달 뒤쯤 기존에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된 박씨는 주구장창 일자리를 주겠다는 그의 제안에 자연스레 귀가 기울여졌다.

제안받은 월급은 180만원. 성과에 따라 수당도 나오고, 회사에서 숙소도 제공한다고 했다. 이상한 회사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마침 일자리 구하는 게 마땅치 않았던 박씨는 그 길로 서울로 올라왔고, 그렇게 악몽은 시작됐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회사에 들어간지 채 1주일이 되지 않았을 때쯤. ‘매니저’, ‘오너’라고 불리는 이들은 박씨에게 집요하게 대출을 권유했다. 박씨가 찾아간 곳은 영화 회사가 아니라 불법 다단계업체였던 것. 그것도 20∼30대 젊은이들이 만든 업체였다. 서울에 도착해 맞이한 숙소는 33㎡(10평)남짓 다세대 주택 반지하 방이었고, 또래 여성 14∼17명과 함께 지내야 했다.

연고도 없이 올라와 불안해하는 박씨에게 ‘윗사람’들은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며 온갖 감언이설로 대출을 부추겼다. 결국 박씨는 1000만원을 대출받아 800만원 상당의 화장품과 건강기능용품을 구매했다. 시중에서 7만5000원에 판매되는 화장품은 57만7500원으로, 4만4000원짜리 건강기능식품은 29만원으로 둔갑했다. 나머지 200만원은 ‘생활비’ 명목으로 상납해야 했다.

그렇게 빌린 1000만원은 생전 처음 대출을 받아본 박씨의 족쇄가 됐다. 이후 박씨는 시도때도 없이 온갖 수단을 써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그게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할당을 못채우면 잠을 안 재웠어요. 영하의 날씨에 슬리퍼만 신고 쫓겨나서 새벽 2∼3시까지 사람들 모으러 다녔어요. ‘알겠다’, ‘가겠다’는 답장을 받아 보여줘야만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윗사람들이 억지로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데, 하나둘 거짓말이 쌓이면서 빠져나오기 힘들어지는거죠.”

작업은 항상 3인 1조로 진행됐다. 박씨가 맡은 역할은 먹잇감을 이성적으로 꼬드기는 ‘도사’. 타깃이 남성이면 여성이, 여성이면 남성이 도사 역할을 맡는다. 도사와 함께 반드시 팀에 포함되는 이른바 ‘담당’은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이를 이른다. 자신의 슬픈 가정사를 슬쩍 흘리면서 상대방의 아픈 부분을 어루만지는 역할이다. 상대를 홀리는 기법들은 모두 업체에서 세뇌식으로 배웠다.

신입→매니저→선배→대선배→오너→이사→고문. 조직은 철저한 위계제였다. “누가 몇천만원을 벌었다”는 등 세뇌가 일상이었고, 군기도 셌다. 신입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건 빌린 돈 때문이기도 했지만, 조직이 항상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선배와 신입 손에 들어오는 돈은 없었지만, 그들은 항상 “신입을 많이 데려오면 승진할 수 있고, 그러면 돈은 금방 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거수일투족 감시 속에서 사는 삶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중간 간부들은 실시간으로 팀원들의 사생활을 감시해 보고했고, 모바일 메신저로 출퇴근 시간, 판매 실적 등을 챙겼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할 때는 감시자를 붙여 “잘 지낸다, 조만간 내려가겠다” 등의 발언을 강요하기도 했다.

간혹 누군가 이 생활을 못버티고 “나가겠다”고 하는 날에는, ‘작은방’이 들썩였다. 작은방은 온갖 방법으로 조직원을 다잡는 장소로, 안에서 하는 얘기가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항상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 조직은 작은방에서 신입들을 어르고 달랬다. 때로는 화도 냈다.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뺨도 때리는 등 폭력을 일삼는 장소였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그렇게 서초구 일대에 마련된 합숙소는 모두 19곳. 209명의 신입들은 모두 20대 초중반 취업준비생이었다. 박씨는 “부모님께 거짓말을 해 대출받았던 것을 메우기 위해 일을 계속 해야만 했다”며 “도저히 못 버티겠어서 아무말 없이 몰래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뒤늦게 사정을 아신 부모님께서 더 큰 일 안 당하고 그만한 게 다행이라고 하시긴했지만 죄송한 마음만 든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들의 행각은 불법감금 중이던 일부 피해자들이 가족에게 알려 부모 등이 경찰에 6차례 신고하면서 결국 꼬리가 밟혔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불법 다단계 업체를 운영한 혐의(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정모(30)씨 등 3명을 최근 구속하고 관계자 3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조사결과 ‘정 고문’, ‘김 이사’ 등으로 불리던 간부들이 취업을 미끼로 신입 등에게 뜯어낸 돈은 모두 14억원. ‘돈을 벌어보겠다’고 나선 청춘들을 고혈을 짜낸 것이었다. 박씨 등이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는 동안 고문 정씨는 역삼동에 있는 고급 아파트에 살며 외제 차를 끌었다. 명품을 좋아했으며 고급 술집에 즐겨 다녔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정씨와 김씨 등 이사 3명은 모두 2011년 5000여명의 대학생들을 울렸던 이른바 ‘거마(거여·마천동)대학생’ 불법 다단계 조직에서 중간간부로 활동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자신이 몸 담으면서 배웠던 것을 다른 청춘들에게 고스란히 써먹은 것이다. 김씨는 8개월간 수당으로 1억원을, 또다른 김모(28·여)씨와 최모(29·여)씨는 각각 7000만원과 4000만원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계속된 경기불황과 역대급 취업 한파가 만든 씁쓸한 모습이다. 이밖에도 최근 기승을 부리는 취업사기 탓에 취준생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 6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두 달간 진행한 ‘선발비리 특별단속’에서 취준생을 상대로 한 취업사기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429명(186건)을 검거해 44명이 구속됐는데, 유형별로 취업사기가 220명(51.3%·119건)으로 가장 많았다.

경찰 관계자는 “취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청년들의 초조한 마음을 노린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고수익을 보장하는 일자리를 알아볼 때는 반드시 주의해야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창수 기자, 사진=박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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