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건축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건축영화라면 언뜻 떠오르는 건 딱딱한 제목과 달리 아련하고 애틋한 첫사랑 이야기였던 ‘건축학개론’ 정도인데, 집 짓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주인과 건축가, 시공자 등 관계자들 사이의 갈등을 재미있게 이야기로 풀어보겠다고 하니 신선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의식주 중에 특히 영상미디어인 방송이나 영화 소재로 삼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 주(住), 집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요리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들이 한창 유행했던 것도 한두 시간이면 웬만한 재료, 심지어 냉장고에 남아 있는 남은 재료를 가지고도 보기도 좋고 맛도 있는 한 그릇의 음식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패션에 대한 것 역시 시각을 기반으로 한 다양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손쉽게 구성할 수 있는 데 비해 건축은 유독 까다롭다.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라기도 애매하고, 짓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자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한두 달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막대하게 드는 데다 딱히 재미의 포인트를 찾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간혹 방송이나 영상 관련 자문 요청이 와도 특별히 새롭게 보여줄 만한 것이 없다고 결론이 나곤 했는데 이번에는 뭔가 다를 모양이었다.
일단 집 짓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하나하나 꺼내보았다. 가장 자주 발생하는 갈등은 당연히 돈 문제다. 처음에 시작할 때 얼마이면 되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물가는 금세 오르고 좋은 기술자들은 인건비를 높여 부르며 건축주는 자꾸만 보다 좋은 사양의 자재에 눈이 간다. 거기에 공사기간도 늘어나기 마련이니 집을 짓는 비용은 늘 예산의 10~20% 정도의 추가 금액이 발생하기 일쑤다. 그 비용을 선뜻 내는 건축주도 별로 없고 전혀 안 받는 시공자도 없으니 애꿎은 건축가들만 사이에서 곤란해지곤 한다.
그다음은 민원이 문제다. 보통 피치 못할 경우가 아니면 태풍 한 번은 지나가고 폭염도 있고 장마도 있는 변화무쌍한 우리나라 기후를 고려해 혹한기나 혹서기를 피해 공사를 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으로 공사가 지체되는 일은 드물고 기다리다 보면 해결이 되곤 한다. 그러나 사람으로 인한 문제, 즉 ‘민원(民願)’이 발생하면 그런 천재지변보다도 더 무서운 상황이 된다. 언제 해결이 될지 기약도 없고 해결의 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민원이란 원래 주민이 행정기관에 대하여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일이니 원래는 주민과 주민 간의 일이 아니다. 통행이 불편한 도로를 포장해 달라든가, 어려운 이웃에 대한 지원을 늘려 달라든가, 어두운 골목길에 가로등을 달아 달라든가 등 당연히 요구해야 할 일들은 참 많다. 그런데 건축에서의 민원이라고 하면 주로 직접 당사자 사이에 풀어야 할 이웃 간의 갈등을 행정기관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간혹 정말 옆집이 집을 짓다가 기초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우리 집 담에 금이 갔으니 보상해 달라든가, 너무 먼지가 날려 건강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가림막을 잘 쳐 달라든가 하는 당연한 요구사항도 있다. 그러나 우리 집보다 높게 지으면 햇빛을 가리니 집의 층수를 낮춰 달라든가(도심에서 일조에 대한 민원은 무효라는 판결이 있다), 전봇대를 새로 설치할 때 우리 집 앞을 지나지 않도록 하라든가(도시 골목에서는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어떤 집은 20평 정도의 땅에 10평이 채 안 되는 규모로 짓고 있었더니 그렇게 작은 집을 무엇 하러 짓느냐는 등 상식 이하의 말도 안 되는 민원도 있었다. 그러면 그런 민원은 대체 누가 넣는가? 우리는 그 영화 제작자에게 집 지으려는 땅에 처음 갔을 때 가장 먼저 다가와 낯선 이방인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가장 세게 민원을 넣는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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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의 눈길이 집중됐던 헌법재판소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5층, 1만9221㎡(5814평) 규모로 1993년 준공됐고, 그 해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최고상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건축을 하다 보면 비슷비슷한 집을 짓는 것 같아도 땅이 다르고 사람이 다 다르다 보니 매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게 좋은 일일 때도 많지만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에는 특히 국가적으로 큰일을 겪기도 했지만, 업무에 있어 겪은 어이없는 민원과 그에 대한 행정기관의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대처방식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40여년 전 유신정권 시절까지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민원을 해결하고 중재해 주어야 할 행정기관에서, 집을 지으려던 땅의 이웃이 우리 경계를 넘어와 세운 담장 때문에 생긴 분쟁을 건축가가 나서서 해결하라며 공문까지 보내면서 설계업무 외적인 부분까지 개입하도록 강요한다. 그에 대해 해당 관청에 이의를 제기하고 상급기관인 건설교통부에 질의를 넣었더니 한참 지나서 나온 결론은 ‘허가권자와 상의하라’는 것이었다. 도돌이표가 가득한 악보처럼, 예전 같으면 유관 부서에서 건축법에 근거한 기준을 제시했을 법한 일까지 법적 판단을 분쟁 당사자들에게 맡기고 책임을 피하겠다는 태도로 바뀐 것도 우리 사회가 후퇴하고 있다는 현실을 체감하게 한다.
이미 2000년대 초반 이후부터 전자민원 방식으로 처리되던 제출서류들을 직접 들고 와서 설명하라고 부른다든가, 그래서 협의를 하러 찾아간 민원인들을 일부러 기다리게 해서 줄을 세운다든가, 건축법에도 없는 ‘지자체 내규’(그러나 절대 그 규정을 공개하지는 않는다)를 들어 이미 적법하게 설계한 내용을 임의로 고치라고 한다든가…. 헤아리다 보니 끝이 없다.
내내 놀고 있는 듯 보이는 국회에서도 일은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여러 가지 법이 새로 만들어지고 공표된다. 건축 관련 법령만 해도 지진이 나면 내진설계 기준이 강화되고 화재가 나면 불연재료 기준이 높아진다. 그렇게 바뀐 법이 합리적일 때도 있지만 땜질식 처방일 때도 많고, 더욱 큰 문제는 해석하기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고무줄 잣대가 된다는 점이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지만 민원 앞에서는 남보다 먼저, 더 많이, 더 큰 목소리로 괴롭히는 자가 이익을 보는 일상의 풍경은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적 현실과 무척 닮아 있다.
게다가 지방자치시대임을 잊지 않게 해주는 조례들이 있다. 건축법에 없지만 지켜야 하는 규정이 이웃 경계선에서 50㎝를 띄어 집을 앉혀야 한다는 것(민법 제242조)인데, 이 법은 사실 오래전 처마 길이 때문에 생긴 것이다. 경계에 바짝 붙여 집을 짓다 보면 건물의 처마가 남의 집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고자 생긴 법이 이미 처마가 없어진 도시 한복판의 건축물에도 계속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요즘은 각 지자체마다 조례로 옆집과의 이격 거리를 1m 혹은 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민법만 기억하다가는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위치와 조건의 땅인데도 지자체마다 달리 적용되는 조례를 적용하다 보면 집 지을 자리나 형태가 어떤 집은 유리하고 어떤 집은 불리해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것은 어찌 보면 헌법에서 보장한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이 된다.
법에도 일정한 단계가 존재하고 상위법이 하위법에 우선하며, 하위법은 상위법의 내용에 위반될 수 없다는 가장 기본적인 법 적용 원칙에 반하는 일인데도 현장에서는 외면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틈을 악용해서 집요한 민원인들이 제기하는 억지성 민원이 이어질 때, 민원을 받는 입장의 괴로움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욕망과 악의와 왜곡이 상식과 원칙을 이기는 일을 방조해서는 안 될 일이다.

법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저울을,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인간세상에서 재판을 할 때 주관성을 버리겠다는 뜻으로 눈을 가린 것이고,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겠다는 뜻으로 칼이나 법전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편견을 버리고 공평하고 정의롭게 옳고 그름을 가리겠다는 의미로 저울을 들고 있다는 것이다.
눈을 가린 만큼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옳은 길을 보아야 할 ‘법(法)’이란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규범이고, 국가 및 공공 기관이 제정한 법률, 명령, 규칙, 조례 등이 해당된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국가의 입장은 다르겠지만, 개인이 느끼는 ‘법’의 영역은 그저 나에게 큰 손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어디로 기울지 않고 공평하게 적용되었으면 하고,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상식선에서 집행되었으면 한다는 소박한 바람 정도이다.
그러나 그 ‘상식’이라는 것이 무너지는 모습을 우리는 지난 몇 달간 참담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아마도 헌법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집중된 적은 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현장에서 상식과 원칙이 무너지는 일을 수시로 겪다 보니,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는 일이 오히려 거의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일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래서 더더욱 시민들이 매주 주말마다 광장에 나갔는지도 모른다.
탄핵 선고가 임박했을 무렵 볼일을 보러 가회동 근처에 나갔다가 헌법재판소 앞을 지나다 보니, 탄핵 기각을 주장하는 1인시위대가 문 앞에서 기세등등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탄핵에 찬성하는 목소리는 왜곡하여 축소하고, 반대의 목소리에는 대통령이 앞장서서 감사의 인사를 던지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음을 그때 실감했다. 여론조사에서 80%의 국민이 탄핵에 찬성하고 있음에도, 주말마다 광장 반대편에서 부도덕한 대통령을 옹호하는 세력이 언성을 높이며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를 함부로 휘둘러도 그저 눈길을 돌려야만 했던 2017년 이른 봄의 쓸쓸한 풍경이 아마도 쉽게 지워지지는 않을 것 같다.
온 국민의 눈길이 집중되었던 헌법재판소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5층, 1만9221㎡(5814평) 규모이다. 극적인 대칭과 비례를 맞춘 위압적인 형태, 끝없이 오르는 계단으로 주눅 들게 하는 대법원 청사나 여타 다른 ‘법의 공간’들에 비해 권위적인 인상은 덜한 편이다.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보니 지어진 해(1993년)에 한국건축문화대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위압적인 계단 대신 정문을 통과하지 않고도 대강당에 들어갈 수 있도록 강당 입구를 따로 만들고, 청사 부지 내의 천연기념물 백송을 보존하기 위해 정원을 조성했다는 점, 그리고 대소 심판정과 강당은 수입목 대신 전국의 철거 고가옥 목재를 사용했다.” 당시 설계자인 김희수 건축가(현신종합건축 대표)는 기존에 지어진 권위적인 형태의 법원 건물들이 주는 딱딱한 이미지 대신 쾌적한 시민공원의 느낌을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재동의 옛 이름은 잿골이라는데, 계유정난 때 한명회가 작성한 생사부에 따라 입궐하는 사람들을 죽여서 그때 흘러내린 피를 덮기 위해 재를 뿌렸다는 고사에서 유래하는 이름이다. 권력을 쥔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좌우한 내력을 지닌 헌법재판소 터에는 조선 말기 좌의정을 지낸 박규수 선생의 집이 있었고(1807~1876),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종합병원인 광혜원이 자리했다가(1885~1887), 경기여고(1910~1945), 창덕여고(1949~1989) 등이 머물기도 했다. 오래전 창덕여고가 있던 시절 우연히 찾아가 보았던, 지금은 헌법재판소 영역 내에 있는 600년 된 그 백송은 명성에 비해 생각보다 작았지만, 생각보다 품위가 있었던 기억이 있다.
모두가 숨죽이며 기다리던 선고의 날에 8명의 재판관은 상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당연히 내려야 할 판결을 내렸고, 축제처럼 봄이 망설임 없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임형남 가온건축 공동대표·‘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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