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퍽퍽한 삶에 염증을 느낀 직장인 안원상(47·가명)씨는 2012년 경북의 한 농촌으로 귀농하면서 푸념처럼 늘어놓았던 말을 실행으로 옮겼다. 그는 이 지역에서 애호박 수입이 쏠쏠하다는 말에 얼른 농지를 사고 시설하우스까지 지어 농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별다른 준비 없이 시작한 초보 농사꾼인 그의 의욕처럼 농사가 잘 될 리 없었다. 이 작물, 저 작물로 바꿔가며 안간힘을 썼지만 그는 3년여 만에 농사를 포기했다. 수차례 실패 끝에 자신감도 떨어졌고, 귀농을 위해 도시생활을 정리한 자금도 슬슬 바닥을 보이던 참이었다.
안씨는 “경제적으로 압박이 되기 시작하니 초조해지고 조급해졌다”며 “농촌에 오면 도시보다 돈을 덜 쓸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고, 웬만큼 농사를 하면 직장에서 벌던 만큼은 아니더라도 먹고살기엔 충분할 걸로 생각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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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에서 마루농장(딸기, 포도 재배)을 운영하는 최희진씨 부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짬짬이 조경수 재배 경험을 쌓아온 이들 부부는 2011년 가족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귀농을 결심했다. |
제2의 인생을 꿈꾸는 귀농·귀촌 붐이 여전하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통계청의 귀농·귀촌 통계·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귀농·귀촌가구는 모두 32만9368가구로 전년(31만115가구)보다 6.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의 대부분을 농사를 지어 조달하는 귀농가구만 보더라도 2014년 1만758가구에서 2015년에는 1만1959가구로 11.2% 늘었다.
1998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등장한 귀농·귀촌 흐름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등을 계기로 귀농·귀촌이 급증하고 있다고 농식품부는 분석했다. 높은 주택가격과 고용 불안 등으로 도시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는 반면에 교통·통신의 발달로 도농 간 거주지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점, 국민 생활양식의 변화 등이 서로 맞물리고 있는 점도 귀농·귀촌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무작정 귀농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귀농귀촌종합센터에 따르면 귀농 후 농사에 실패하거나 적응하지 못해 다시 도시로 돌아간 역(逆)귀농률은 11% 정도로 추정된다. 역귀농 집계가 아직 잘 되지 않은 데다 해당 조사가 단순히 전화로만 진행돼 전화 수신이 되지 않거나 전화번호가 변경된 가구, 조사를 거절한 가구 등의 현황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실제 비율은 이보다 높을 것으로 보인다.
역귀농을 희망하는 이유로는 ‘소득이 부족해서’라는 응답이 37.8%로 가장 높다. 이어 ‘농업노동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대답이 18%로 두 번째로 높았고, ‘가족들의 불만’ 15.3%, ‘의료·교통 등 생활환경 불편’ 12.0%, ‘외로움, 고립감’ 8.7%, ‘지역주민들과의 갈등’이 8.2%로 뒤를 이었다.
김귀영 귀농귀촌종합센터장은 “귀농인의 상당수가 전체 농업인 중 고작 3%에 불과한 ‘억대 부농’의 꿈을 안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디어 등을 통해 일부 이러한 사례가 부각된 것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농촌이라 물가가 싸서 생활비가 적게 들 것이라는 예상도 실제와는 다른 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2012∼2015년 귀농한 가구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귀농가구의 연간 소득은 귀농 직전에 평균 4574만원이었으나, 귀농 첫해에는 1781만원으로 3분의 1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이 중 영농으로만 얻은 소득은 평균 600만원 정도이며, 식당 등을 운영하거나 직장에서 받는 월급 등 농업 외 소득과 기타 소득이 각각 773만원, 408만원이었다.
귀농시기별 연간 소득을 보면 2012년 귀농가구의 경우 3242만원(2015년 기준), 2013년 3145만원, 2014년 3071만원, 2015년 1984만원이다. 반면 귀농가구의 월 평균 생활비는 평균 190만원에 달한다. 연간으로 따지면 2280만원이다. 항목별 비중으로는 식비가 33.6%, 수도·전기료, 난방비 등 주거비용이 19.5%, 교통통신비 13.8% 등의 순이다. 이런 평균치를 보면 귀농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의 소득을 내지 못하거나, 앞서 정씨의 사례처럼 오히려 소비가 소득을 넘어서는 상황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김 센터장은 “귀농을 통한 소득 계획이 분명해지면 귀농하라”고 강조한다. 그는 “예비귀농인들을 상담해 보면 대부분 어느 지역으로 가서 무슨 농사를 짓고, 집은 어디다 마련할지 등을 고민하지만 정작 어떻게, 얼마나 벌 것인가에 관한 부분은 굉장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먼저 귀농생활을 위해 얼마가 필요한지부터 계획하고 농지의 규모, 매입·임대 등 부분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노지 농사인지 시설하우스를 운영할지, 얼마나 투자할지 등을 세부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내가 사는 지역의 주산품목과 유통이 원활한 작물이 무엇인지, 가공이나 직거래, 6차산업 등도 미리 생각해 봐야 한다고 김 센터장은 조언했다. 소득작물 역시 월 단위로 출하해 고정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단기 소득작물, 6개월∼1년 단위의 중기 소득작물, 3∼5년을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장기 소득작물 등으로 나눠 관리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김 센터장은 “귀농을 단순히 감성적인 활동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심도 있게 공부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귀농에 명확한 목표와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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