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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아야 비로소 주변의 소중한 것들 보이죠”

입력 : 2017-02-07 21:26:39 수정 : 2017-02-08 15: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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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은 얼굴 표정 5년째 그려오고 있는 전병현 작가 “나의 심장이 붓끝에 있다. 여백에 숨어 있는 바람조차 그릴 수 있어. 수천 번의 붓질로 그려낸 단 하나의 표정. 너의 입술은. 표정 앞에 서면 절벽 앞에 있는 것 같아. 눈을 감는다는 건 내 마음의 불을 켜는 일. 너의 얼굴 속에 내가 있다. 눈 감고 세월을 먹어버리자. 그게 우리 얼굴이야. 닫힌 눈 뒤에 있는. 종이 속으로 너를 보낸다.”

가까운 사람들의 눈감을 표정을 지난 5년간 그려오고 있는 전병현(60) 작가의 독백이다. 그의 눈 감은 그림을 보면 시각장애를 딛고 에널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신순규씨의 에세이집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판미동 발간)을 떠올리게 된다. 수필집에서 신씨는 “증권의 본래 가치나 장기 가치가 눈에 보이지 않고, 또 의외로 간단한 것들로 결정되는 것처럼 삶에서 중요한 것들 역시 눈에 보이지 않고, 몇 가지 간단한 것들로 결정되고 유지된다”고 말했다. 수많은 정보와 화려하고 자극적이고 보기 좋은 것들로 에워싸인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삶의 단순한 근본 원리들을 잊기 쉽고, 당장 눈앞의 힘든 현실 탓에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는 얘기다.

종이를 붙이고 뜯고 칠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감성의 편린들을 건져 올린다는 전병현 작가. 고구려 습식벽화 기법을 화폭에 옮겨놓은 그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덤덤하면서도 선명하게 다가온다.
“눈을 감아야 비로소 주변의 소중한 것들과 얼굴들이 보이게 됩니다.”

그는 상대의 눈 감은 표정에서 내면적 소통의 창을 본다. 그저 아는 것을 넘어서, 관계의 존재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얼굴을 그린다는 것은 그의 생애를 느끼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생의 절반을 눈 감고 살고 낮 동안 깜빡이는 것까지 합치면 많은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은 스스로 눈 감은 모습은 절대 볼 수 없기에 보여주고 싶었다.”

그가 그린 눈 감은 인물들의 표정도 다양하다. 온화한 표정, 서글서글한 미소를 짓거나 그저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어 보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특히 눈 감은 인물들의 입의 표정에서 풍부한 감정이 느껴진다.

작가는 이를 위해 독특한 질감의 아프리카 종이를 사용하고 있다. 너무 말라 있기 때문에 물감이 잘 스며들지 않아 작업하기가 수월하지 않은 재질이다. 하지만 수많은 붓질로 물감이 서서히 스며들어 생긴 거친 물자국으로 인한 골이 매력적이다. 메마른 땅에 물을 대고 모를 내는 형국이다.

눈감은 표정
“아프리카 종이를 쓰는 특별한 사연도 있다. 내 친구가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선교생활을 하는데, 그곳의 여인들이 자식을 위해서 수입에 보태고자 한땀 한땀 만든 종이이기 때문이다. 미약하지만 작은 도움을 주고자 종이를 구입한 것이었지만,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의 종이였다.”

야자수와 바나나 이파리, 아프리카 바람에 굴러다니던 검불과 코끼리, 사자 등 야생동물의 냄새가 묻어있는 재료라 할 수 있다.

“붓에 물을 흠뻑 찍어 그리면 종이에 구멍이 나기에 조심히 다뤄야 한다. 종이를 살살 천천히 달래가면서 그리는 것이 마치 자동차 하나 없는 붉은 흙길을 따라 거니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느린 삶을 생각나게 한다.”

그는 물감도 고구려 고분벽화처럼 습식벽화용 수용성 안료를 썼다. 발색이 깨끗하고 자연미가 넘치는 색채를 낼 수 있어 인물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작가는 일상 속 소소한 물건들과 풍경도 눈감을 표정과 함께 작업했다. 평소에는 그냥 스쳤지만 눈감으로 비로소 가까이 다가오는 것들이다.

“어느 날 키우던 강아지가 소파를 잔뜩 물어뜯어 놓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붙이기와 뜯어내기’ 정물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커다랗고 두꺼운 한지에 색을 입히고 다시 배접을 하며 붙이고 칠하기를 반복한다. 이어 다시 형태를 아우르며 뜯어내기를 반복한다.”

그의 작품에서 다양한 감성들이 묻어나는 이유다. 9~23일 아트사이드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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