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한 형사의 공조 수사를 다룬 코믹액션 영화 ‘공조’(감독 김성훈)가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다.
화려한 액션과 코믹한 연기가 버무려진 영화를 보며, 먼저 ‘투캅스’(감독 강우석, 1993), ‘리쎌 웨폰’(감독 리처드 도너, 1987) 등 남남 투톱 액션영화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현빈이 연기한 북한 형사 캐릭터를 보며, ‘의형제’(감독 장훈, 2010)에서 강동원이 연기한 남파 공작원, ‘용의자’(감독 원신연, 2013)에서 공유가 연기한 북한 특수요원 캐릭터 등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동안 우리는 많은 한국영화에서 북한인 캐릭터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공조’에서 북한 형사(현빈)는 남한 형사(유해진)와 여러모로 비교가 되는 인물로 그려진다. 언뜻 보면 냉혹해 보이나 알고 보면 가슴 속 아픔을 지니고 있고, 뛰어난 수사력과 무술 실력을 가진 유능한 형사의 모습이었다.
북한 캐릭터들이 주로 등장 한 1960~70년대 반공영화들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다. '기승전 악인'도 아니고, 악역도 아니다. 게다가 남한 형사의 적도 아니고 동료다. 우리 편인 것이다.
그 시절 반공영화에서 이런 설정이었다면, 영화가 완성도 되기 전에 영화감독이 반공법 위반으로 체포되거나, 완성이 되었다 하더라도 검열에서 대폭 수정이나 삭제되거나 상영금지 판정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한국영화 속 북한 캐릭터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였다. 세계적으로 냉전체재가 약화되고, 국내에서는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영화에 대한 수입 허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남부군’(감독 정지영, 1990), ‘태백산맥’(감독 임권택, 1994) 등은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기존과는 다른 빨치산의 모습을 그려냈다. 비슷한 시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감독 김종학, 1991~1992)에서도 인간적인 빨치산, 인민군이 등장했다.
더 큰 변화는 1990년대 후반에 시작됐다. 1996년 10월 영화 검열 즉 사전심의에 대한 위헌 판결이 내려지면서, 1997년에는 관련 법률이 개정됐다. 그리고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 남북 관계에도 변화가 일면서 영화 속 북한 캐릭터는 좀 더 달라졌고, 다양해졌다.
1999년 개봉되어 한국 영화의 블록버스터급 흥행 성공 가능성을 증명한 강제규 감독의 ‘쉬리’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이 잔혹하지만 매우 유능해 보이는 특수군 대장(최민식)과 남한 특수 요원(한석규)과 사랑에 빠져 고뇌하는 남파 간첩(김윤진)이 등장했다.
같은 해 개봉된 장진 감독의 코미디영화 ‘간첩 리철진’에서는 남파되자마자 택시 강도를 당한 간첩(유오성)과 공작금을 기다리면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고정간첩(박인환)이 소동극을 벌이기도 했다.
2000년 9월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서는 남북한 군인들이 호형호제하기에 이르는데, 당시 제작진들은 영화를 준비하며 국가보안법에 대한 걱정을 했다고 한다. 개봉 후 JSA전우회의 항의를 받기도 했지만, ‘쉬리’가 세운 최대 관객 동원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영화 안팎으로 변화된 시대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후 ‘태풍’(감독 곽경택, 2005), ‘웰컴 투 동막골’(감독 박광현, 2005), ‘국경의 남쪽’(감독 안판석, 2006), ‘만남의 광장’(감독 김종진, 2007), ‘크로싱’(감독 김태균, 2008), ‘의형제’, ‘포화속으로’(감독 이재한, 2010), ‘베를린’(감독 류승완, 2012), ‘은밀하게 위대하게’(감독 장철수, 2013), ‘동창생’(감독 박홍수, 2013), ‘용의자’, ‘인천상륙작전’(감독 이재한, 2016) 등에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른 설정과 소재, 스토리, 인물들이 등장해왔다.
물론 그때 그 시절 반공영화에서 보아온 인물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매우 유능한 군인이나 요원도 존재한다. 적어도 그 시절보다 다양한 인물들이 공존하고 있다. 영화 검열이 사라지면서 좀 더 자유롭게 다양한 생각들이 담기게 되고, 변화무쌍한 남북한 관계로 인해 관심이 증가한 것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세상은 영화 밖 세상과 함께 변화한다. 그저 거울처럼 반영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영화 속 세상은 정치, 경제, 사회 변화와 더불어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의 변화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의 변화 등 영화 밖 세상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면서 편견을 재생산하기도 하고, 비판 받고, 수정되기도 한다.
이 세상에 한두 가지 모습으로 재현이 가능한 인물이 있을까 싶다. 남한, 북한이라는 구분뿐만 아니라, 성차, 직업, 세대 등 다른 구분에 있어서도 다양하고 다층적인 시선으로 창조된 인물들을 오늘도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영화방송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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