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이란 이름으로 빗나간 자식 사랑
마지막 한걸음은 스스로 걷도록 해야
정유라씨의 이대 부정입학을 둘러싼 격렬한 진실공방을 바라보며 ‘모성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한다. 부와 권력을 거머쥔 자들은 ‘내 자식이니까 내 모든 것을 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내 자식도 나처럼’ 모든 것을 다 가진 자,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인 것일까. 그들은 사랑과 집착의 경계를 성찰하지 않으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부정과 비리를 말끔히 덮어버리려 한다. 그 와중에 멍드는 것은 정직하고 소박하게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 오직 노력과 진심밖에는 무기가 없는 착한 젊은이들의 마음이다.
에밀리 디킨슨은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속삭였다.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고객에게도 ‘사랑합니다’를 외치는 이 못 말리는 사랑의 대홍수 속에서, 오히려 진정한 사랑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에밀리 디킨슨의 시처럼 사랑이란 ‘딱 내 마음의 크기’ 만큼만 담아내고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어떻게 사랑하는지는 곧 내 마음의 깊이와 크기, 내 정신의 경계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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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 |
김애란의 소설 ‘달려라, 아비’는 집착하거나 연민에 빠지지 않고 건강하게 자식을 사랑하는 멋진 어머니의 이상형이 등장한다. 이 작품을 소리내어 읽으면, 아주 당찬 두 여인이 떠오른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혼자 가위로 탯줄을 자르며 딸을 낳은 어머니, 그리고 그 어미를 불쌍해하지 않으며 당당히 세상과 맞서 싸워온 총명한 한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딸아이를 힘들게 키우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은근한 유머와 보이지 않는 배려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주인공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줄행랑을 쳐버린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당황하거나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이 된다는 것이 너무도 두려워 머나먼 이국 땅으로 도망가버린 못난 아비의 삶을 이해하려 한다.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지도, 나를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고마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 자신의 안부라는 것을. 어머니와 나는 구원도 이해도 아니나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였다.”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라는 대목에 줄을 긋고 나는 한참 동안이나 감격하여 그 문장을 오래오래 곱씹어 보았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연민과 집착 없이 딸을 건강하게 키워낸 아름다운 싱글맘으로 독자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이다. 이 몇 줄의 짧은 문장에서 나는 한 생명을 키워낸 힘, 겉으로 보기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한 여인의 위대함을 속속들이 느꼈다. 누군가를 사랑하되 그가 견뎌야 할 세상의 간난신고를 대신 겪어주지는 말자. 누군가를 사랑하되 그 사람의 방패막이는 되지 말자. 아무리 위대한 멘토가 있다 한들, 아무리 훌륭한 대모나 대부가 있다 한들, 마지막 한 걸음은 기필코 자신의 힘으로 건너가야 하기 때문이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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