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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세이] 속마음과 겉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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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29 21:23:52 수정 : 2017-02-03 15: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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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말연시를 앞두고 일본의 지인들로부터 받은 메일에는 지난해와 달리 ‘광화문 촛불집회’가 눈에 띈다. 이들은 광화문 집회를 ‘촛불혁명’이나 ‘시민의 힘’으로 해석해서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본은 시민들이 주축이 된 광장의 힘을 보여준 역사적 사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저들의 입장에서 그렇다고 해도 충분히 수긍이 간다. 그러나 이들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정치의 후진성으로 촉발한 촛불집회의 원인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다. 이처럼 나 듣기 좋은 한쪽 면만을 강조하는 일본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늘 그들의 진짜 속내가 궁금하다. 왜냐하면 일본의 문화에는 혼네(本音·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겉마음)의 이중성이 용인되기 때문이다.

우리도 일상의 대화에서 상대방 말의 진의가 궁금할 때 ‘진짜입니까’라고 다시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느낌은 일본에서 ‘혼네데스까(진짜입니까)’와 그 강도가 훨씬 다르다. 일본에서 이 말은 정말로 당신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표현한 것인가라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왕현철 KBS미디어 감사·전 도쿄특파원
예를 들어, 이웃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가 자신의 일상생활을 방해한다고 느낄 때 우리와 일본인의 대응 방법은 다를 것이다. 우리는 피아노 소리를 내는 집에 전화를 하거나 찾아가서 소리를 낮추어 달라고 직접적인 의사표시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은 우리와 달리 피아노 치는 부모를 우연을 가장해 만나서 ‘댁의 자녀 피아노 연주 실력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라고 칭찬할 것이다. 그러면 이 말을 들은 부모는 자신의 아이 피아노 실력이 늘어난다고 우쭐해하기보다는 오히려 피아노 소리가 이웃에게까지 들린다는 것을 재빨리 눈치채서 소리를 낮추어야 할 것이다. 속내가 겉마음에 실려 있는 것이다.

언어는 문화의 축약이라고 한다. 양국의 언어에서도 그 특징이 잘 드러난다. 우리는 ‘…하겠다’라고 직접적인 의사 표시를 하거나 감정을 잘 드러내는 표현이 많다. 반면, 일본어는 ‘…해 받겠다’라는 상대가 주체가 되는 애매한 표현이나 수동형 문장이 많다. 그래서 일본어를 구사할 때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지만 일본인 특유의 애매한 표현 방법이나 수동형 문장을 잘 사용해야 고급 수준에 이르게 된다.

내가 일본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실망하는 한국인을 종종 만났다. 일본인과 상담할 때 분명히 좋은 표현이 많아서 곧 계약이 될 것 같았는데, 결국에는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상대방의 요구를 딱 잘라 거절하지 않고 듣기 좋은 표현만 사용했기 때문이다. 즉 혼네와 다테마에를 잘 구분하지 못해서 일어난 착각이었던 것이다.

일본인의 다테마에는 상대가 듣기 싫어하거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속내를 숨기는 부드러운 표현 방법이다. 즉, 일본인들은 자신의 진짜 속내를 구름에 달 가듯이 아스라하게 표현하는 것을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과의 대화에서 진짜 속내를 파악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일본인들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며 일본인과 사귀거나 비즈니스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일본인들이 상대를 신뢰하지 않아서 그 속내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질서 유지에 필요하다는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잘 드러내는 것이 믿을 수 있다는 한국, 자신의 생각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전체 질서 유지에 도움이 되고 상대를 배려한다는 일본, 그 문화적 차이를 잘 이해하면 오히려 서로에 대한 신뢰를 키우고 좋은 거래 당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왕현철 KBS미디어 감사·전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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