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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의해 탄핵소추를 당한 박근혜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할 헌법재판소 청사 전경. |
헌재는 2004년 3월12일 국회가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어겼다”며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직후 심리에 착수했다. 윤영철 당시 헌재소장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심판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주심 재판관은 검사 출신 주선회 재판관으로 정해졌다.
탄핵심판은 통상의 위헌법률심판과 달리 꼭 변론을 열어 당사자들 주장을 듣게 돼 있다. 이에 헌재는 2004년 3월30일 대심판정에서 1차 공개변론을 열었다. 법률상 ‘피소추인’ 신분인 대통령이 변론에 직접 참석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 때문에 노 대통령은 출석하지 않고 김기춘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소추위원’ 자격으로 헌재 대심판정에서 탄핵소추 이유를 재판관들에게 설명했다. 대신 노 대통령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 박시환 전 대법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10여명으로 변호인단을 꾸려 탄핵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탄핵 사유 중에는 측근비리도 포함됐다. 재판관들은 측근들의 비리가 노 대통령과 직접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구속기소된 노 대통령의 측근들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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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13일자 세계일보 1면. 전날 있었던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소식을 전하고 있다. |
2004년 4월30일 7차 변론을 끝으로 헌재는 심리를 사실상 마치고 결정문 작성에 착수했다. 이때 탄핵에 찬성하는 재판관들의 소수의견을 결정문에 넣을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당시 헌법재판소법은 탄핵심판과 위헌정당해산심판의 경우 소수의견 표시에 관한 명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았다. 이에 헌재 내부는 물론 법학계와 법조계도 소수의견 공개를 놓고 찬반 양론으로 갈려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결국 헌재는 ‘탄핵심판은 소수의견 비공개가 원칙’이란 결론을 내리고 2004년 5월14일 노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기각 결정을 선고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노 대통령이 법률을 어긴 사실은 있으나 파면에 이를 만큼 심각한 위반은 아니다’는 식으로 논리를 폈다. 당시 소수의견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법조계에선 김영일, 권성, 이상경 재판관이 탄핵 찬성 의견을 내 재판관 9명이 6(기각) 대 3(탄핵)으로 갈렸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이후 헌재법이 개정돼 탄핵심판과 위헌정당해산심판도 소수의견 공개가 의무화됐다. 이 개정 법률은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때 처음 적용돼 8(해산) 대 1(기각)이란 재판관들의 표결 내용이 공표됐다. 이번 박 대통령 탄핵심판도 탄핵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재판관들이 자기 의견을 결정문에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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