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보검이 배우로서 가치와 가능성을 입증했다. 전작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 이후 차기작에 쏟아진 기대, 이로 인한 부담감을 이겨내고 새로운 모습을 꺼내 보였다. 박보검은 KBS 2TV '구르미 그린 달빛'(이하 구르미) 이영 역에 군주의 카리스마와 19살 소년의 장난기를 녹여냈다. 홍삼놈·라온(김유정 분)과 그려낸 풋풋한 멜로, 불안한 정치 상황 속 왕세자의 고뇌를 적절히 아우르며 호평을 얻었다. 시청률 20%를 웃돌았던 '구르미' 종영 이후 박보검의 위상도 달라졌다. 박보검은 들뜨기보다 차분히 '구르미' 그리고 이영을 되새겼다.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 사극이었고, 아름다운 한복을 입을 기회였어요. 또 원작 소설을 짧게 읽어봤는데 설레는 포인트가 많아서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었죠. 초반에 대본도 술술 읽히고, 사람들 마음을 움직여야 하겠다는 자신감으로 찼지만 점점 긴장됐어요. 저의 차기작이라는 관심이 쏠릴 때마다 책임감과 부담감도 생기더라고요. 제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고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있었고요. 중심이 잡히지 않을 때마다 감독님과 리딩하며 이영에 가까워지려고 했어요. 대단하신 선배님께 의지하면서 중심을 잡고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어요."
박보검은 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내면으로 위기를 헤쳐가는 이영 캐릭터에 존경을 표했다.
"이영은 어린 나이지만 성숙하고, 나이에 맞는 천진난만함을 갖고 있어요. 이영이 짊어진 책임감과 무게감이 외롭고 쓸쓸하게 와 닿더라고요. 김헌(천호진 분) 등 대신들과 있을 때 대적해야 하고, 가족을 지켜내야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대상은 내관들 뿐이었으니까요. 19살에 그런 무게를 견뎌낸 이영이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박보검은 자유분방했던 이영이 점차 고뇌하고 갈등하는 군주로 성장하는 모습을 밀도 있게 그려갔다. 난(亂)을 일으킨 홍경래의 딸인 라온과 사랑에 빠지는 상황은 애절함을 극대화했다. 그는 이영이 처한 상황에 집중하며 연기했다고 털어놨다.
"극 초반에는 자유분방하고 천진난만한 날라리 왕세자로 풀어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회차가 진행될수록 진중함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영을 표현하려고 했죠. 왕위를 노리는 세력과 대립하는 정세 속 팽팽한 기 싸움 표현할 때는 평소 사용하지 않는 대사를 써야 해서 벅차고 어렵기도 했어요. 대사를 반복해 연습하고, 상황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특히 대본 이외의 것들을 느끼도록 해주고, 이영의 감정에 이입하게 도와준 선배님들께 감사했어요."

박보검은 6살 어리지만 연기 선배인 김유정과의 호흡에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김유정에 대해 "첫 만남부터 대본 이상의 삼놈이를 보여주더라"며 극찬했다. 또 "감정이 뛰어나고, 모르고 있고 놓친 부분에 있어 시야가 넓은 친구"라며 "연기 내공이 탄탄해 의지가 됐으며 많은 사람을 움직일만한 역량을 가졌다"고 김유정과 호흡한 소감을 전했다.
"초반에는 어색해서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구덩이 신을 찍은 이후 진짜 이영, 삼놈이가 됐어요. 현장 공기가 고스란히 설렘을 다가왔죠. 삼놈이가 살아있는 것처럼 귀엽고 사랑스럽게 연기해줘 그 감정을 그대로 느꼈어요. 현장에서 장난도 많이 치고, 눈만 봐도 웃겨서 NG도 많이 냈어요. 그만 좀 웃으라고 감독님한테도 혼날 정도였으니까요."
박보검이 '응팔'에서 연기한 프로바둑기사 최택은 승부욕 넘치는 근성을 지녔지만 결핍된 일상의 모습이 여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캐릭터였다. 사랑에 적극적인 '구르미' 이영 캐릭터는 최택의 사랑법과 다소 차이를 두고 있다. 박보검은 상반돼 보이는 최택과 이영의 모습이 자신과 닮았노라 털어놨다.
"택이와 이영의 가장 큰 공통점은 외유내강이에요. 겉으론 유순해 보이지만 강인하고 우직하죠. 저와 가장 비슷한 면이에요."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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