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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탈리아서 재회한 옛 사랑…다시 타오르는 두 사람

입력 : 2016-10-20 21:23:59 수정 : 2016-10-20 22: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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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감독 신작 '두 번째 스물'

박흥식 감독의 ‘두 번째 스물’은 삶을 깊이 있게 응시하면서 관계와 사랑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한다. 민영화사 제공
문득 지나간 옛 사랑과 옛 추억이 그리울 때 꺼내 보면, 공감의 깊이가 더욱 깊어질 영화다. 잔잔하게 밀려와 가슴을 파고드는 감정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박흥식 감독의 신작 ‘두 번째 스물’은 중년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중년이 되면 누구나 한번쯤 죽음을 생각한다. 비로소 인생이 보인다. 마침내 사랑도 ‘제대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동감’의 폭을 무한대로 확장시켜 나간다.


민하(이태란)는 ‘잘 나가는’ 안과의사다.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에 대해 줄줄이 꿰고, 포도의 품종을 설명해가며 와인을 음미할 만큼 삶이 여유로운 마흔의 여자다. 민구(김승우)는 마흔여덟의 영화감독이다. 두 아이를 사랑하는 평범한 가장이기도 한 그는 국제영화제 단편부문 심사위원을 맡아 이탈리아를 찾았다. 20대 중반에 불같은 사랑을 나누다 헤어진 두 사람은 13년이 흐른 뒤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우연히 만나 다시 옛감정의 불씨를 살린다.


두 번째 스물은 여자 나이 마흔 살을 달리 표현한 말이다. 주인공들은 나이 40세를 이르는 ‘불혹’(不惑)조차도 ‘불타는 유혹’의 줄임말이라 풀이한다.

하지만 첫 번째 스물(20)과 두 번째 스물(40)의 사랑을 비교해보면 설령 ‘온도’ 차이는 없다 하더라도 ‘표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스물 때도 뜨겁게 사랑을 나누어보지만 첫 번째 스물 때의 사랑과는 ‘다름’을 느낀다. 낭만이 깔린 바다 앞에서 다시 돌아온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 딸아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 식이다.  

이탈리아의 북부 대도시 토리노부터 전원도시 만토바까지 현지에서 90%가량 찍었다. 카메라를 따라가는 이탈리아 여행은 보너스다.


두 남녀는 여행하는 동안 문화예술을 주제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특히 카라바조의 그림을 찾아 이탈리아 곳곳의 미술관을 돌아보며 그의 작품 세계와 삶, 죽음, 구원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는 제멋대로인 성격과 천부적인 재능, 선술집에서의 폭음과 싸움, 많은 빚과 음침한 친구들, 반복된 투옥, 살인, 수년간의 도주생활, 그리고 때 이른 죽음 등 ‘천재’ 예술가가 갖추어야 할 항목들을 빼곡하게 갖춘 ‘회화의 반항아’다.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산 그의 회화 양식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티가 났지만, 그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참신하고 강력하며 대담한 자연주의 화풍으로 채워, 17세기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인문학적 지식을 갖추면 더 재미있게, 감독이 숨겨놓은 상징과 은유, 의미들을 하나씩 발견해가며 더 많은 것을 풀어 볼 수 있는 영화다. 

길을 걷거나 화랑에서 그림을 대할 때는 예술적 지식과 감성을 자랑하던 이들이지만 호텔로 돌아오면 달라진다. 서로의 몸을 탐하는 것은 물론 ‘과거에 누가 먼저 상대를 찼는가’를 놓고 13년 전 결별의 순간을 복기하며 티격태격한다.


“우리는 결혼을 생각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긴 거야. 많은 것을 가진 너와 결혼 하기란 그때의 내겐 너무 버거웠거든.”(민구)

“넌 내가 아무 때나 뛰어들 수 있는 바다였어. ··· 내가 꺼지라고 소리쳤어도 넌 거기 있어야 했어. 네가 먼저 날 찬 거야.”(민하)

실제 연인의 모습을 보는 듯, 두 배우의 물오른 연기가 몰입을 돕는다. 이태란 특유의 똑 부러진 이미지는 오히려 멜로 영화에서 흔하지 않은 매력으로 작용한다. 김승우는 중년 남성을 그야말로 차분하게 그려낸다. 책을 볼 때 안경을 올리며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실제 노안에서 터득한 연기일 듯싶다.
 박 감독은 “1999년 단편으로 토리노영화제에서 수상한 적이 있는데, 그때 토리노 영상위원회 측이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찍는다면 도와주겠다고 해서 이탈리아를 무대로 시나리오를 썼고, 그러다 보니 주인공 직업도 영화감독으로 설정했다”고 귀띔한다.


영화 속 중년의 사랑은 20대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로를 알기 때문에 오히려 20대 때보다 적극적이다. 옛 사랑에게 몹쓸 짓을 많이 하고 헤어진 사이라면 재회가 부담스러울 법도 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뭘 어쩌자는 것은 아니다. 이문세가 부른 ‘옛사랑’의 노랫말처럼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놔두자고도 한다.

영화는 대충 보면 불륜 아닌가 싶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른이 된’ 사랑을 그려낸다. 옛 사랑은 꼭 스쳐간 사람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그동안 일상에 쫓기느라 접어두었던 사랑을 펼쳐보며, 다시 사랑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야겠다. 다시 사랑을 시작해야 할 때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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