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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증의 내얼굴은 뭐좋다고 웃고있나

입력 : 2016-05-22 08:00:00 수정 : 2016-05-22 11: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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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근. 목에 건 사원증을 조심스레 만졌다. 흰 셔츠를 휘감은 줄이 멋있다. 플라스틱 케이스 안의 내가 웃는다. 대학 졸업 후, 이력서를 넣으며 찍었던 증명사진이 자리를 찾은 것 같다.

신기했다. 출입문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되도록 사원증 줄이 늘어났다. 어디까지 길어지나 봤더니 오른팔을 쭉 뻗어도 아무 이상이 없다. 살며시 놓으니 ‘탁’ 소리가 나며 사진이 가슴에 부딪혔다. 다시 해봐도 똑같았다.

서울 구로구의 한 IT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A(29)씨는 출근 첫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의 사원증을 걸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달랑거리면서 전후좌우 흔들리는 게 재밌게 느껴졌다. 사원증 속 내가 “오늘 느낌 괜찮아?”라는 말까지 거는 것 같았다.

그런데 변했다. 봄날 목에 걸었던 사원증은 여름날 더위에 조금씩 자리를 벗어났다. 출근할 때 ‘삑’ 찍고, 가방에 넣기 바빴다.

강남의 같은 직종 회사로 이직한 A씨는 “그때는 사원증을 걸고 집에 간 적도 있었다”며 “‘애사심이 이렇게 깊은 사람은 처음 본다’는 농담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원증을 걸고 지내는 시간이 짧아지더니 이제는 가방 혹은 사무실 컴퓨터 옆에 놓여있을 뿐”이라고 웃었다.

대학시절 서울 서대문구의 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B(33)씨는 “점심시간 밀려드는 넥타이 부대를 볼 때마다 그들 목에 걸렸던 사원증에 눈이 갔다”며 “사회생활을 굳게 버텨나가는 전사 같은 느낌을 줬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현재 강남의 한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입사 초기 소중히 여겼던 사원증을 목에 걸고 지내는 시간이 점점 줄었다는 사실이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사원증 속 자기를 지금과 비교하면 너무 달라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에 물들면서 당찼던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면서 말이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사원증을 가리켜 ‘개목걸이’라고 부르는 웃지 못할 게시물까지 나왔다.
 

이환천의 문학살롱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하루하루 업무속에 / 죽어가는 나완달리 / 사원증에 내얼굴은 / 뭐좋다고 웃고있나”

페이스북에서 ‘이환천의 문학살롱’ 페이지를 운영하는 SNS 시인 이환천씨가 지난 4월 게재, ‘좋아요’ 600여회와 ‘공유’ 30여회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시다. 직장인 스트레스 특집으로 올라온 작품 제목은 ‘폼 나던 그때’다.

이씨는 “직장인에 관한 시를 쓰려다 보니 밝은 부분보다 어두운 부분에 공감이 갔다”고 말했다. 직장생활에 찌든 자기와 달리 막상 목에 걸린 사원증 속 사진은 그런 속도 모르고 해맑게 웃지 않느냐는 것이다.
 
제 사원증입니다. 해맑게 웃고 있네요.


이씨는 “그런 상황이 웃프게(웃기면서도 슬프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는 게시물에 달린 “사원증 사진도 업데이트 하라”는 댓글에 대해서는 “재밌었다”며 “사원증 사진 업데이트 하다가는 영정사진이 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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