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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의 웰컴 투 아이슬란드] 항구엔 관광·포경선… 고래와의 사투 그린 소설 '모비딕'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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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13 10:00:00 수정 : 2016-05-12 21: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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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고래를 찾아
레이캬비크 항구에는 고래관광을 원하는 여행객을 태우기 위한 많은 관광선들이 정박하고 있다.
이제는 아이슬란드의 잠자리가 제법 편안하다. 9시간의 시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숙면을 방해하던 어슴푸레한 밤도 견딜 만하다. 여정의 피곤함이 여행객을 깊은 잠으로 이끈다.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꼭 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배를 타고 나가 고래를 만나는 일이다. 세계 10대 고래 관광국가 중 하나인 아이슬란드에서는 4∼9월에 크고 작은 고래 20여종을 만날 수 있다. 밍크고래나 돌고래 같은 작고 날씬한 고래들이 많고, 범고래나 혹등고래, 흰긴수염고래 등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매년 50만명 이상이 아이슬란드에서 고래관광에 참가한다. 고래관광은 매년 10%씩 성장하는 아이슬란드의 유망산업이 되고 있다. 고래관광의 중심지는 바다에 플랑크톤이 풍부한 후사비크이지만 수도인 레이캬비크에서도 꽤 많은 관광선이 고래관광에 나서고 있다.

미리 예약을 하자 호텔로 픽업차량이 왔다. 예약한 여행객을 태우기 위해 주변 호텔을 돌아 항구에 도착한다. 차가운 바람이 짠 내음을 잔뜩 머금고 바다에서 불어온다. 투어에 나설 배들이 빨간 깃발을 휘날리며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다. 안내에 따라 배에 오르니 드디어 출항이다.
바다와 달리 바람이 쎄지 않은 레이캬비크 항구 전경.

아이슬란드의 바다는 파도가 높고 바람이 차갑다. 업체에서도 방한복을 지급하지만 투어에 나서기 전 따뜻한 옷차림이 중요하다. 높은 파도 탓에 배는 놀이기구 바이킹을 탄 듯 위아래로 심하게 요동친다. 배에서는 하얀 봉투를 하나씩 나눠 준다. 웬만큼 바다에 익숙하지 않고서는 뱃멀미를 피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를 가르며 바다로 나아간다. 뱃머리에 서니 거대한 흰 고래와 인간의 사투를 그린 소설 모비딕(백경)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이슬란드 바다의 장엄함이 소설의 강렬한 이미지와 어울리는 탓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서 포경은 여전히 ‘현실’이다. 항구를 빠져나오는 배 사이로 검은 포경선들이 눈에 띈다. 아이슬란드는 유럽에서는 드문 포경 국가다. 매년 긴수염고래와 밍크고래 150여마리를 잡아 일본으로 고래 고기를 수출한다. 아이슬란드는 지난 30년간 몇 차례에 걸쳐 포경 재개를 선언하고 철회하기를 반복했지만 2006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상업적 포경을 하고 있다. 고래 관광의 성장 못지않게 전통적인 포경산업의 유혹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포경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하나의 문화를 이뤄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포경은 산업적으로도, 전통적으로도 국제사회에서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이슬란드는 포경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고래를 보호해 관광산업화하고, 한편에서는 고래를 사냥해 수출하고 있다. 이중성에 마음 한쪽이 무거워진다.
시내 중심을 벗어나면 한적한 레이캬비크.

배 앞머리 전망대에 있는 선원이 바다 상황을 살핀다. 고래가 나타나면 시계의 시각 방향을 외쳐 위치를 알려준다. 검은 등을 드러내는 고래는 수줍은 듯 이내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다. 다양한 각국 언어로 환호와 아쉬움의 탄성이 뒤섞인다. 모두 한 손에는 구토 봉투를, 한 손에는 사진기를 들고 고래의 출현을 기다린다. 국적을 불문하고 고래를 보겠다는 호기심과 열정이 얼굴에 가득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원들이 방향을 알려주는 속도가 잦아진다. 평화롭게 바다를 유영하고 숨을 쉬기 위해 등을 내놓다가 다시 꼬리를 치며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조용하고 일상적인 그 모습만으로도 눈을 떼기 어렵다. 바다에서 만나는 고래는 그 압도적인 스케일과 영민한 몸놀림만으로도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탄성과 아쉬움을 지르다 보니 어느새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레이캬비크의 항구로 돌아오니 날씨도 바람도 가라앉는다. 속을 불편하게 하던 바다의 울렁임도 함께 가라앉았다. 육지에 적응하고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서는 아이슬란드식 커피가 제격이다. 소박한 카페로 향했다. 레이캬비크에는 아이슬란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정겨운 카페들이 많다. 커피를 사랑하는 아이슬란드 사람들로 붐빈다. 아침 출근길에도 커피 한잔을 즐기고 저녁 퇴근길에도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시내 중심가인 레이가베구르 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뻗은 스콜라뵤르두스티구르 거리의 북적이는 사람들.

커피로 속을 달래고 시내 중심가로 향했다. 레이가베구르 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뻗은 스콜라뵤르두스티구르 거리를 따라 걸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이슬란드 전통의 울 제품들이다. 아이슬란드 니트인 ‘로파페이사’는 전통적인 아이슬란드 울 스웨터다. 바이킹 시대부터 울은 의상이나 담요 등에 사용돼 추위를 막아 주었다. 채소 재배가 힘든 이곳에서 양은 의와 식을 담당하는 중요한 자원이었다. 전통적인 모직산업이 최근에 디자인 혁명으로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 겨우내 손으로 짠 수제품과 디자이너의 감각이 더해진 제품들이 여행객을 유혹한다. 다만 저렴하지는 않다.

거리를 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허기가 밀려온다. ‘블라우스켈’이라는 홍합요리를 택했다. 깨끗한 바다에서 통통하게 자란 홍합은 화이트 화인과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낸다. 아이슬란드는 1년 내내 양식 홍합을 즐길 수 있다. 바다 내음과 어우러진 홍합요리가 바다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주었다.
시민과 새들의 휴식처인 트외르닌 호수. 레고블록 같은 알록달록한 집과 시청사를 끼고 있는 호수는 가벼운 산책에 적합하다. 호수 주위가 보행로로 둘러싸여 있고 시내 곳곳과도 연결된다.

식사를 마치고 시민과 새들의 휴식처인 티외르닌 호수 주위를 걸었다. 레고 블록 같은 알록달록한 집과 시청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호수는 가벼운 산책에 적합하다. 호수 둘레가 보행로로 연결돼 있고 시내 곳곳과 연결된다. 새들이 모여 있는 곳은 겨울에도 얼지 않도록 지열로 데워진 온수가 유입된다고 한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기 위한 배려다.
콘서트홀 겸 콘퍼런스센터로 주상절리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된 근대적인 건물 ‘하르파’. 바다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멀리서도 빛에 반사돼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거리는 유리창을 볼 수 있다.

호수를 따라 걸어 ‘하르파’에 도착했다. 콘서트홀 겸 콘퍼런스센터로 주상절리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된 근대적인 건물이다. 바다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멀리서 보아도 유리창이 빛에 반사돼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거린다. 햇빛이 유리창에 부서지며 하루가 저문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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