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정진의청심청담] 사피엔스, 인간의 내장된 종말 읽게 해

관련이슈 박정진의 청심청담

입력 : 2016-04-25 21:41:37 수정 : 2016-04-27 15:26:2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패권중심의 서구 문화
그대로 대변한 문명예언
영생·생명은 기계일 수 없어
인류평화 대안 제시 못해
책 속에 짙은 허무주의 내재
‘사피엔스’라는 인류 문명사를 씀으로써 일약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오른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의 유발 하라리의 내한과 더불어 한국의 여러 언론매체들은 대서특필하면서 그가 현대의 예언가라도 된 듯 열광하고 있다. 심지어 ‘유발 하라리에게 미래를 묻다’라고 선전하는 매체도 있다.

한국 지식계와 독서층이 세계적 베스트셀러 학자를 초청해 인터뷰 하고, 마치 우리 문제를 그들이 해결해 줄 것처럼 착각에 빠지는 신기루 현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낸 하버드 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도 좋은 예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도 많이 팔리지 않은 재미없는 철학서에 가까운 책이다. 한국에서 200만부 판매량은 한국사회가 정의에 목말라하고 있음을 방증했을 뿐이다. 스스로 세계적 안목의 책이나 주체적인 책을 쓰지 못하고 기껏 구미 학자의 짜깁기 책이나 모방작, 재탕삼탕한 책을 내는 데에 그치는 한국 지식인의 행태와 독자들의 지식사대는 할리우드의 최신작 영화선전을 위해 주연배우를 초청하는 이벤트와 닮아있다. 한국사회는 언제나 ‘나’(우리)의 문제를 ‘남’(외국)이 답해주기를 기다리는 얼빠진 사회이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사피엔스는 역사학, 인류학, 생물진화학은 물론이고 신화, 종교, 철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산출해놓은 지식집적을 토대로 인간의 미래를 내다본 융합학문적 성격의 책이다. 독자들은 우선 저자의 방대한 지식 섭렵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저자가 알고리즘을 가진 인공지능(AI)을 닮아있다고 생각됐다. 그 알고리즘은 ‘절대(정신)=기계(인간)’이다. 놀랍게도 그는 죽음과 영생도 기술적인 문제로 본다. 서양의 후기근대 철학을 대표하는 니체는 인간이 ‘힘(권력)에의 의지’의 동물임을 실토한 바 있다. 현대 과학문명을 주도하고 있는 서양에서는 힘, 패권주의 신화가 만연하고 있다.

사피엔스의 멸종과 이를 대체할 세력으로서 인조인간, 사이보그(인간과 기계의 결합)를 설정하는 저자의 결단과 냉엄함은 참으로 유대그리스도 문명권의 후예답다. 어떻게 저자 자신이 소속한 사피엔스가 자신을 대신할 기계인간을 진화의 다른 종으로 설정하고도 당당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이것 자체가 과학이 주도하는 인류 문명의 정신병리학적 현상인지도 모른다. 사이보그가 점령하는 지구는 그 사이에 많은 것을 생략하고 있다. 인간과 사이보그의 전쟁, 이 속에는 문명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끝없는 욕망과 힘의 경쟁이 있으며 평화는 없다. 유발 하라리는 훌륭하게도 인류학적 지식과 그동안 인류가 쌓아놓은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자신의 문명 예언서를 쓰긴 했지만, 지식을 종합하는 방법은 어디까지나 역사학자답게 헤겔의 역사철학 전통 아래에 있다.

사피엔스를 보면서 몇 해 전 하버드대학의 정치학자인 새뮤얼 헌팅턴이 쓴 ‘문명의 충돌’을 떠올리게 됐다. 인류가 문명충돌, 즉 종교전쟁으로 인해 종말적 전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 저자는 서구 문명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다분히 인류학적이고 진화론적인 지식을 활용하면서 사피엔스의 멸종을 예언하고 있지만 헌팅턴은 종교로 인한 인류의 종말적 전쟁을 예언했다.

서구 문명은 왜 힘의 경쟁과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또 이를 선호하는 것인가. 여기엔 서구 문명 자체의 모순이 있다. 그것은 세계를 절대적·인과적·직선적·진화적 세계로 보는 현상학적 태도이며, 이는 유대그리스도 전통에서 출발한다. 진정 ‘신들의 전쟁’의 문명인가. 인류 문명을 서구에 맡겨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멸종과 패권에 굴복한 서구 지식인을 보는 것이다.

‘사피엔스’와 ‘문명의 충돌’은 인간에 내장된 자기멸종의 시나리오를 읽게 한다. 기계가 인간을 멸종시킨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문명의 이기로써 인간을 죽이는 것과 같다. 어떻게 영생과 생명이 기계기술이라는 말인가. 이것은 인류학적 마인드도 아니다. 둘 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는 좋은 신호나 징조가 아니다. 이들의 주장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고 실증적이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인류의 평화를 도모하기 위한 대안적 노력은 보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이들의 책에서 깊이깊이 숨겨진 허무주의를 읽을 수 있다. 말하자면 문명의 충돌을 막기 위한 노력이라든가, 인조인간에게 멸종당할 인류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연민의 정이 부족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욕망을 스스로 제어하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으면 인간은 언젠가는 멸망할 것임에 틀림없다. 힘과 실체의 상승과 증대를 꾀해온 서양 문명은 무한대의 욕망, 즉 인간의 섹스프리(sex-free: 생식적 섹스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프리섹스(free sex)로 변모시키면서 성적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이는 가정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서양문명을 대표하는 위의 책들도 실은 욕망을 상부구조의 텍스트로 미화하거나 승화하거나 감춘 것에 불과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서양 문명은 욕망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욕망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한대’를 ‘무’로 바꾸는 의식의 혁명이 수반돼야 한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