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기치 않은 ‘와규 vs 한우’의 승부는 싱겁게 끝났다.“아이 체인지드 마이 마인드.” 한우 쇠고기 몇점을 음미한 A씨는 “어떠냐”는 물음에 “생각을 바꿨다”고 답했다. 한우 쇠고기의 풍미가 단박에 미식가 A씨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다. 지난해 5월초 벽제갈비 타워팰리스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우의 세계화가 일보 전진하는 현장이었다고 해야 할까. 정부가 추진하는 한식문화 세계화는 진작 민간 음식점의 식탁에서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벽제갈비는 한우의 경쟁력을 무기로 그 전선의 맨앞줄에 선 기업형 쇠고기 전문식당이다. 한우의 우수성을 믿고 한우만으로 승부한다. 테니스 여제 샤라포바도 국내 경기후 벽제갈비를 찾은 적이 있다고 한다. 해외 유명인사들이 찾을 정도로 이미 국내외에서 ‘명품 식당’의 반열에 올랐고 이제는 본격적인 세계 시장 진출을 준비중이다.
한우라고 모두 경쟁력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늘의 명성은 최고급 한우만을 고집하는 김영환(70) 벽제외식산업개발 회장의 경영철학과 노하우가 일궈낸 값진 결과물이다. 한우에 대한 김 회장의 믿음은 굳지만 한우를 고르는 기준은 엄격하고 까다롭다.
◆“쇠고기맛은 DNA가 결정”
김 회장은 최고의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는다. 외식업 승부는 식재료에서부터 갈린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맛좋은 한우’를 찾아내는 건 그에게 성패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일이다. “질 좋은 쇠고기요? 그건 유전자가 결정합니다.” 김 회장은 “쇠고기맛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다”고 믿는다. 과거 전국의 농가를 누비며 우수한 혈통의 소를 생산하는 목축업자를 찾아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이유다.
신뢰 문제로 지금은 경매를 통해 소를 마리째 사는 방식으로 바꿨는데 여전히 쇠고기 품질 등급중 최상급인 ‘마블링스코어 9’만을 고집한다. 김 회장은 “마블링스코어 7,8,9가 흔히 말하는 투플러스 등급인데 그중 9번이 가장 우수하고 희소성 있는 최고급”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혈통이 좋아도 질 낮은 사료를 쓰고 스트레스를 주면 ‘넘버 나인’ 등급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우수한 혈통의 소를 거기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사육할 때 명품 한우가 되는 것이며 그런 한우는 일본 와규보다 뛰어나다는 게 김 회장의 주장이다. 그가 한우의 세계화를 꿈꾸며 해외시장 진출을 추진하는 자신감의 근원이다.
쇠고기만이 아니다. 김 회장은 모든 식재료를 엄선한다. 소금조차 허투루 조달하지 않는다. 질 좋은 소금을 구하기 위해 전국의 해안마을을 누비며 ‘양심적 염전업자’를 찾아내고야 만다. 김 회장은 “얼마나 깨끗하게 염전을 청소한 뒤 순수한 소금을 생산하느냐는 건 양심에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성공비결, ‘소통’
김 회장이 말하는 또 다른 성공 비결은 소통이다. 관리직과 기술직의 소통을 말하는데 김 회장이 꼽는 ‘제일 어려운 비즈니스’다. 김 회장은 “요식업이 성공하려면 소통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걸 해결하지 못하니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 외식 프랜차이즈가 선진화한 시스템을 갖고 국내에 진출했다가 줄줄이 망해 철수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간 소통의 문제”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시스템이 아무리 훌륭해도 사람들이 벽을 쌓고 있으면 소용 없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상사 눈치보지 않고 자기일과 동료들만 보면서 일할 수 있게 만든 게 벽제갈비 조직문화”라며 “창조적 도전은 소통 없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벽제갈비는 매장과 한화 갤러리아, 롯데백화점에서 냉장·냉동 테이크아웃 음식사업도 병행하는데 이 같은 창의적 신사업도 소통을 기반으로 시도할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식당에서 이렇게 체계적으로 테이크아웃 음식을 판매하는 것은 국내 첫 시도”라고 말했다.
◆DJ장남에게 인수한 벽제갈비
건설업체 월급쟁이였던 김 회장이 외식업에 뛰어든 건 40대에 들어서다. 실직이 계기였다. 중동건설 붐이 사라지면서 지금으로 치면 ‘명퇴’당했다. 재취업 보다는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창업을 택했는데, 외식업에 뛰어든 건 ‘맛집’을 찾아다니는 취향 때문이었다. 처음엔 서울 방배동에서 피자집을 열었는데 1년여만에 접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했다.
서울 신촌의 벽제갈비를 인수한 건 1986년이다.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홍일씨가 운영하던 식당이었다. “개인적 인연은 없고 마침 매물로 나와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홍일씨와는 운명적 만남이었다.
시장을 둘러본 그는 자신감에 찼다. “신촌에서 쇠고기 분야로 1등을 해야겠다는 야망을 갖게 됐다”고 그는 회고했다. 자신감을 자극한 건 외식업계의 ‘비양심’이었다. “1등부터 밑에까지 죽 둘러보니 다들 정직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소를 물을 먹여 잡는 등 돈벌이에 급급한 행태에서 반면교사의 교훈과 지혜를 얻은 것이다. “‘진실한 음식’으로 고객의 신뢰를 쌓아가면 분명히 되겠구나.” 김 회장의 경영 철학은 확고해졌다.
식당 경영은 순풍에 돛을 단 듯했다.월 매출이 600만원 가량이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6000만∼7000만원이다. 김 회장은 “내가 마이다스의 손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타이밍을 놓쳐 상호는 바꿀 수 없었다. 너무 빨리 유명해져버렸기 때문이다. “뒤늦게 바꾸려 했더니 다들 말리더라”고 했다. 1997년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김 회장은 갈비를 싸들고 홍일씨 집을 방문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홍일씨는 몸은 불편했지만 당시만 해도 기억력과 언변이 뛰어났다”고 회상했다. 2009년 DJ 서거 당시 장례식장의 홍일씨는 파킨슨병이 심해진 모습이었다. 그는 전두환 정권 당시 고문의 후유증으로 파킨슨병 발병 전에도 혼자 몸을 가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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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과 소통. 지난 11일 서울 방이동 벽제외식산업개발 사무실에서 진행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영환 회장이 외식산업 성공 비결을 역설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
외식업계엔 왜 ‘삼성전자’가 없을까. ‘신촌의 1등’에서 ‘한국의 1등’으로 김 회장의 야망은 커져갔다. 김 회장은 1등을 하되 삼성전자처럼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1등 브랜드를 꿈꿨다. 초지일관 최고의 식재료를 고집하는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30개 직영점의 위치도 그런 콘셉트에 맞춰 선정했다. 정치중심지인 서울 종로1가와 여의도, 부촌의 상징 타워팰리스, 연예인들이 많은 청담동과 압구정동, 삼성사옥 앞, 세종시와 인천공항 등 오피니언리더들의 거점을 중심으로 직영점을 열었다. 김 회장은 “사회지도층에게 한우에 대한 자부심을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직영을 고수하는 것도 1등으로서의 엄격한 품질 관리를 위해서다.
경쟁상대는 고베 와규였다. 김 회장은 “고베 비프가 가장 비싼 고급 쇠고기로 마케팅하는 데 성공했는데 그에 맞서 우리 소가 충분히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쇠고기만은 아니다. 벽제갈비 계열 외식업체인 봉피양의 평양냉면과 돼지갈비도 1등 메뉴로 자리잡았다. 봉피양 평양냉면은 음식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몇몇 유명 평양냉면중 1등을 차지했다. 여름에 봉피양에서 평양냉면을 먹으려면 한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최고급 식재료만을 쓰다보니 가격은 ‘착하지’ 않다. “비싼 만큼 질 높고 정직한 음식으로 승부한다”는 게 김 회장의 신념이다. 벽제외식산업개발의 월 매출액은 50억∼60억원 가량이다.
◆“세계 시장의 러브콜 기다리죠.”
김 회장은 국내 성공을 발판으로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준비중이다. 러브콜은 시작됐고 진출도 진작 하기는 했다. 직영이 아니라 로열티 계약으로 브랜드와 노하우를 수출한 중국 시장은 시험무대였다. 김 회장은 중국 전역에 펼칠 생각이었지만 만만찮았다. 벽제갈비 베이징점은 지난해 문을 닫았다. 베이징점의 중국 사업자가 계속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시진핑 시대를 맞아 공무원 접대를 금기시해 시기적으로 좋지 않기도 했지만 현지 사업자가 식당운영을 표준화, 균일화, 과학화하는 역량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중국시장은 “포기할 수 없는 좋은 시장”이라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 쓰촨,웨이하이, 청두의 벽제갈비, 봉피양은 순항중이기도 하다. 아랍에미레이트 사업가의 러브콜로 아부다비 진출도 준비중이고, 벽제갈비의 일본 현지화를 위해 3년째 준비중인 20대 일본인 유학생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김 회장이 꿈꾸는 러브콜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 “미국 씨애틀 부두가 시장통에서 출발한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에게 신세계가 러브콜을 보낸 것 처럼 미국 등 선진국 기업과 자본의 헌팅 대상이 되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김 회장은 “러브콜은 올 것이고 쉽지는 않겠지만 국내 성공이 세계무대에서도 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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