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 16일.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만 21세의 청년이 스코틀랜드 축구대표팀을 상대로 감각적인 드리블을 선보인다. 젊은 선수의 과감한 돌파에 제아무리 유럽의 강호라고 해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반 14분, 이 선수는 상대 진영 중앙에서 공을 잡은 뒤 페널티 박스에서 태클을 거는 수비수를 가볍게 제치고 골키퍼마저 페인팅 동작으로 주저앉히며 빈 골대로 공을 집어넣었다. 2000년 A매치에 데뷔해 ‘밀레니엄 특급’으로 불렸던 이천수(35)가 ‘축구 천재’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이날 이천수는 2골 1도움을 기록한 안정환을 제치고 경기 MVP를 차지했다.
2002년은 누가 뭐래도 이천수의 해였다. 한·일 월드컵에서도 활발한 움직임과 발재간으로 공격의 활로를 뚫으며 활약한 그는 소속팀인 울산 현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해 K리그 도움왕을 차지하며 팀의 준우승에 기여했고 신인상과 K리그 베스트 11에 올랐다. 이어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선정하는 ‘올해의 신인상’까지 거머쥐었다. 거침없는 언행과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입방아에 오르긴 했어도 그의 실력에 호불호는 없었다.

이천수의 굴곡진 축구인생은 2003년 7월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하며 한국 선수 최초로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하면서부터다. 그는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부진을 떨쳐내지 못했다. 물론 낯선 땅에서 기는 죽지 않았다. 이천수는 방송에 나와 당시 레알 소시에다드의 동갑내기 팀 동료였던 사비 알론소(35·FC 바이에른 뮌헨)와 신경전을 벌였던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하던 그는 이듬해에 CD 누만시아로 임대되었다. 여기서도 적응을 하지 못하자 2005년 3월에 국내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돌아온 천재는 건재했다. 그해 인천 유나이티드 FC와의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팀 우승에 기여하고 역대 최소 경기로 K리그 통산 50번째 20-20클럽에 가입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다. 그는 울산 현대의 우승을 이끌고 K리그 MVP를 수상한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선 국가대표로 출전해 예선 1차전 토고전에서 감각적인 프리킥으로 골을 넣었다.
이후 이천수의 축구인생은 다시 롤러코스터를 탄다. 2007년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이적했지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이듬해 수원 삼성에 임대되어 국내에 복귀한 뒤엔 팀 내 선수, 코칭 스태프들과의 불화로 그 해 시즌 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임의 탈퇴조치를 받는다. 2009년 3월 박항서 감독의 부름을 받아 전남 드래곤즈에 재임대됐지만 시즌 개막전인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부심 판정에 불만을 품고 거칠게 항의해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6경기 출장 정지와 600만원의 벌금 처분을 받는다. 결국 그는 전남 드래곤즈의 19경기 중 9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팀 내 불화도 계속됐다. 그는 김봉수 골키퍼 코치와 불화를 일으켰고 2군행을 요구한 박항서 감독의 지시를 불이행하고 무단이탈하기도 했다. 전남 드래곤즈 구단은 이천수의 임의탈퇴를 요청했고 결국 2009년 7월 K리그에서 임의탈퇴 공시가 확정된다.
같은 해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 알 나스르로 이적했지만 구단을 상대로 8억원의 임금 체불 소송을 벌이는 등 바람 잘 날이 없었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출전 명단에 오르지 못하며 쓴맛을 본다. 엎진 데 덮친 격으로 전남 드래곤즈측이 이천수에 대한 임의탈퇴를 철회하지 않아 K리그 클래식 복귀도 무산된다. 갖은 노력 끝에 2013년 인천 유나이티드 FC로 국내 무대에 복귀했지만 오랜 공백으로 떨어진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2015년 시즌 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천수는 지난 24일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열린 레바논과의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7차전 하프타임 때 공식 은퇴식을 가졌다. 그는 “여러분들 응원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운동할 수 있었고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데, 열심히 잘 살겠다”고 말했다. 아내와 딸 이주은(3)양의 손을 잡고 나온 이천수는 인사를 마친 그는 그라운드를 돌며 팬들에게 선수로서 작별인사를 했다. 다소 긴장한 듯 했으나 선수시절 거침없고 당당한 그만의 아우라는 죽지 않았다. 팬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현재 이천수는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변신했다. ‘축구천재’ 이천수의 제 1의 인생은 파란만장한 공격수였다. 부침이 많았던 만큼 그에 대한 애증과 향수를 마음에 품은 축구팬들이 적지 않다. 오랜 시간 우리를 울고 웃겼던 ‘축구천재’는 이제 그라운드를 떠났다. 자신이 공언한 제 2의 인생에서도 국민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해 줄 그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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