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이 이탈리아에서 데자뷔나 도로의 도플갱어를 접한 느낌이 드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경부고속도로 설계 당시 벤치마킹 대상 도로가 바로 여기였기 때문이다. 일찍이 로마제국은 총 40만km의 도로망을 건설했고, 이 중 간선 포장도로만 8만km에 달했다. 도로 강국의 전통은 근세기까지 이어졌다. 세계 최초의 현대적인 고속도로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1925년 밀라노와 호수 지방을 잇는 유료 고속도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자동차전용도로의 서막을 연 이탈리아는 1964년 연장 755km 규모의 밀라노∼나폴리 간 ‘태양의 고속도로’를 개통했는데, 이 도로가 경부고속도로의 설계 모델이 됐다. 산이 많고 재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로선 독일의 아우토반보다 콤팩트한 이탈리아의 고속도로가 매력적이었다.
![]() |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 |
이용자라면 누구나 돈을 내고 다니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로를 만들어 놓고 관리하지 않으면 잔디밭에 잡초가 자라듯 도로는 엉망이 된다. 지난주 고속도로 통행료 인상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동결됐던 공공요금을 현실화하는 차원에서 이루어 진 것이라고 한다. 흔쾌히 수용하긴 힘들지만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데 동의한다. 필자는 고속도로 유지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한국도로공사에 당부하고 싶다. 이번 요금 인상으로 확보된 재원을 이용자들이 원하는 곳에 소중하게 사용해 달라는 것이다. 도로포장 개선, 고품질 도로방호시설 설치, 시인성 높은 차선 성능 유지, 첨단 교통정보체계 구축 등을 통해 이용자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으면 한다. 이탈리아를 반면교사로 삼아 도로 유지관리를 게을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번 요금 인상을 계기로 한국도로공사는 우리 국격에 걸맞은 세계적인 명품 고속도로를 국민에게 선물해 주길 바란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