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가 찍은 아프리카 사진에도 이따금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풍경의 일부로서 풍경 속에 녹아들어 있다. 주름지고 억센 피부, 너른 지평선을 응시하는 그들의 시선은 대지의 어머니와 한몸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시간의 변화가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있는 생명의 공존이다. 아프리카를 떠올리면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문명화가 덜된 땅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곳에는 나름의 문명이 있고 그곳 자연과 대지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눈 밝은 지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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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같은 아프리카 개미집과 흘러가는 구름을 수직과 수평으로 잡은 작품 ‘신화’. 수직의 욕망과 수평의 현실이 만나서 만들어 내는 것이 신화가 아닌가. |
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엄중한 ‘사실성’에 주목했듯이 그는 제주도나 아프리카의 풍경을 아무런 문명의 왜곡이 없는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려고 했다. 그가 10년 동안의 아프리카 사진찍기 여정에서 돌아와 제주도에 주목한 이유도 도시화라는 문명화의 수난 속에서도 태고로부터의 생명력을 본질적으로 잃지 않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제주도나 아프리카는 모두 시간의 테두리를 벗어난 생명의 땅이라는 점에서 같다. 제주 바닷가의 돌과 바위들은 수만년 동안 바람과 파도에 부딪히며 거의 변함없이 태초의 우주시간을 품고 있다. 광대하게 펼쳐진 아프리카의 초원이나 밀림, 사막도 모두 같은 시원(始源)의 시간을 함축하고 있다. 16~ 23일 갤러리 통큰. (02)732-3848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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