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산 탄생 100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경제계에서는 글로벌 무한 경쟁 시대를 맞아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경제가 다시 비상하기 위해선 한강의 기적을 주도했던 그의 개척자 정신을 재조명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아산의 일생은 전후 부흥의 역사를 이룬 ‘한강의 기적’과 궤를 같이한다. 1915년 강원도 통천군 빈농에서 태어나 당시 소학교 졸업 후 미곡상 점원으로 사회에 진출해 곧장 미곡상 개업, 자동차수리공장 인수, 현대건설·현대자동차 설립, 최초의 국산 고유모델 자동차 포니 개발, 경부고속도로 진출 및 해외 건설 시장 진출로 숨가쁘게 이어졌다. 일생이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개척의 반복으로 압축된다.

특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서 아산 경영철학의 주목할 점은 ‘도전정신’이다. 아산은 “성공에 기적은 없다”고 단언하며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모두 진취적인 기상과 개척정신, 열정적인 노력으로 이룬 것”이라고 믿고 기업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현실을 이유로 도전을 머뭇거리거나 반대하는 이들을 질타한 그의 입버릇이 “해보기나 했어”였다.
아산의 도전정신은 서산 앞바다 간척공사 최종 물막이 구간의 험난한 물살을 대형 유조선으로 막고, 소 1001마리를 끌고 방북하는 등 두고두고 회자되는 경이로운 성공을 이끌어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항만공사도 대표적이다. 당시 9억3114만달러, 우리나라 1년 예산 25%에 해당하는 20세기 최대 규모 공사였다. 숱한 선진 외국기업과 경쟁에서 아산은 “공기를 8개월 단축시키겠다”는 승부수로 수주에 성공했다. 이후 최고 550t, 높이 36m에 달하는 주요 기자재를 현지제작 대신 울산 조선소에서 제작해 1만2000㎞ 바닷길로 운송하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공기를 맞췄다. 이런 대담함에 중동은 혀를 내둘렀고, 이는 현대건설이 중동에 진출하는 교두보가 됐다.

이처럼 아산은 “경험이 부족하면 아이디어를 내고, 능력이 부족하면 밤이라도 새워라”를 주문처럼 외치며 무수히 많은 해외 공사를 수주했다. 현대건설의 약진은 다른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전성시대로 이어졌다. 덕분에 가발 수출 정도에 근근이 외화 획득을 의존해야 했던 빈약한 나라는 외화 곳간을 채우고 경제 개발에 나설 근본 체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지금도 유효한 아산의 또 다른 덕목은 ‘불치하문(아랫사람에게 물어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이다. “사람을 뽑을 때는 항상 신중하고, 일단 뽑은 인재에겐 최대한 권한을 부여하고, 한번 믿은 직원은 끝까지 믿어야 한다”는 용인술을 내내 지켰다. 특히 “나보다 어리고 사회적 지위가 아래라 해도, 내가 모르는 것을 물어 가르침을 받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다”며 상사라도 아랫사람에게 배우는 자세를 갖도록 주문했다.
직관력 역시 남다른 그의 성공 비결이었다. 울산대 허영대 교수는 “특히 당대 시대적 환경과 세상 변화를 읽고 성공의 기회를 찾아내는 데 탁월했으며 넓게는 기업 차원을 넘어서 한국 경제 발전에 꼭 필요하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찾아내는 직관력이 탁월했다”고 강조했다. 23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아산 탄생 100주년 심포지엄에선 이 같은 열기가 뜨거웠다. 아산의 정신과 가치관을 재조명하는 연구총서를 발표한 정진홍 아산리더십연구원장은 “아산의 인생과 업적을 단순히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확산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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