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역사저널 그날', 삼국의 역사물결 바꾼 황산벌 전투 조명

입력 : 2015-11-22 20:47:37 수정 : 2015-11-22 20:47:37

인쇄 메일 url 공유 - +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역사저널 그날'이 삼국시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황산벌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KBS 1TV '역사저널 그날' 99회는 계백이 이끄는 백제군과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이 국을 걸고 격돌했던 황산벌 전투를 조명한다. 신라의 5만 대군과 백제의 5천 결사대가 만났던 그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660년, 신라는 당나라와 손을 잡고 백제 침공을 단행한다. 13만 대군의 당나라는 고구려와 가까운 백제 덕물도에 머물고, 신라는 사비성 대신 북쪽의 백제 남천정으로 진격한다. 고구려를 공격하는 척 백제를 교란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조정의 내부분열로 혼란한 백제는 연합군의 허수에 속아 넘어간다. 뒤늦게 상황을 눈치 챈 백제 조정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신라군은 동쪽 군사요충지 탄현을 통과해버린다. 김유신의 기만전술이 백제의 허를 지른 것이다.

다급해진 의자왕은 사비성으로 오는 길목, 황산벌에 계백 장군을 보낸다. 풍전등화의 백제, 계백의 손에 국가의 운명이 달린 것이다.

위기에 몰린 백제가 황산벌로 급파한 병력은 고작 5천 명이었다. 도성방어와 국경수비로 분산된 병력을 불러들이기엔 시간이 촉박했던 것이다. 설상가상, 계백과 5천 명의 결사대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신라의 명장 김유신이 이끄는 5만 명의 군사였다. 

국운이 걸린 전투 참전하게 된 계백은 출정에 앞서 처자식들을 모두 죽인다. 그는 나라를 위해 죽음도 불사한 비장한 각오로 출정했다. 결사항전한 백제군은 5만 신라군을 상대로 4번의 승리를 거뒀다.

10대 1의 압도적인 병력차를 이겨낸 계백과 5천 결사대! 이들은 어떻게 신라군을 이길 수 있었을까?

4전 4패로 고전하며 위기를 맞이한 신라군 진영에서 16세 화랑 관창이 백제군 진영으로 달려갔다. 창 하나로 적진 한 가운데에 뛰어든 관창은 용맹한 백제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계백은 관창을 살려보내지만 그는 결국 백제군에게 목숨을 잃는다.

말의 안장에 매달려 돌아 온 관창의 목, 참혹한 어린 화랑의 죽음 앞에 신라군은 투지를 불태운다. 신라군의 기세에 병력차를 이기지 못한 백제군은 결국 무릎을 꿇는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신라의 지휘관 김유신의 전략이었다는 학설이 제기됐다. 전쟁의 판도를 뒤집기 위한 김유신의 마지막 승부수였다는 것이다. 관창의 죽음에 관한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었다.

결국 계백과 5천 결사대는 몰살당하고 만다. 마침내 황산벌을 통과한 신라군은 당나라군과 합류해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락시켰다.

백제는 황산벌전투 후 열흘 만에 700년 역사의 막을 내린다. 황산벌 전투는 백제의 멸망으로 삼국통일의 초석이 된 전투였다.

황산벌 전투에 대한 이야기는 22일 오후 9시 40분에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슈팀 ent1@segye.com


오피니언

포토

수지 '매력적인 눈빛'
  • 수지 '매력적인 눈빛'
  • 아일릿 원희 '반가운 손인사'
  • 미야오 엘라 '시크한 손하트'
  • 박규영 '사랑스러운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