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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과 삼천궁녀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은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에 대한 진실을 추적한다. 641년 무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백제의 마지막 군주, 의자왕은 무왕의 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삼십대 후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태자가 되고, 마흔을 훌쩍 넘겨 왕위에 오른다.
천신만고 끝에 의자왕이 즉위하고, 그 다음해 백제 왕실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 왕족과 고위급 인사 40여 명이 추방당한 것이다. 그 중에는 의자왕의 이복조카와 누이동생 4명도 포함돼 있었다. 즉위하자마자 치른 대거 축출이었다.
의자왕은 태자 시절 해동증자로 불리던 효자이자 성군의 자질이 충만한 인물이었다. 그가 효자라는 가면을 벗고 정적 제거에 나선 것일까? 대체 당시 백제 왕실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642년 7월, 몸소 군대를 이끌고 신라 정벌에 나선 의자왕은 신라 40여 개의 성을 빼앗았다. 이후 8월 신라 서쪽 방어지인 대야성까지 무너뜨린다. 신라는 대야성 함락으로 수도를 위협받게 되며 큰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백제의 대야성 점령은 지금까지 치른 전투와는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대야성 전투는 554년 관산성에서의 패배와 성왕의 참혹한 죽음 이후, 88년 만에 이뤄진 설욕전이었다. 지금까지 신라와의 전쟁에서 수많은 승리를 거둔 백제가 유독 대야성 전투를 성왕의 죽음에 대한 복수전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삼국시대 말, 보복이 보복을 낳으며 철천지원수가 된 백제와 신라의 대를 이은 원한은 무술로 남아 전해진다. 바로 조선 후기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본국검이 백제-신라 간의 복수와 관련된 ‘황창랑 설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사저널 그날'은 박금수 박사를 스튜디오로 모셔 본국검을 재현한다.
신라를 거침없이 공격하며 백제의 중흥군주로 거듭난 의자왕은 당과 고구려를 오가는 외교를 통해 실리를 추구하고, 안으로는 민심을 수습하는 애민 군주의 면모를 보인다. 그런데 재위 15년 경, 의자왕이 갑자기 달라졌다. 궁녀들과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고, 음란과 쾌락에 빠진 것이다.
충신 성충의 간언도 무시한 채 그를 옥에 가두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인다. 백제 멸망 5년 전부터 의자왕이 달라지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황음, 방탕한 군주이자 백제 패망의 원흉으로 지목된 의자왕의 숨겨진 진실은 8일 오후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슈팀 ent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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