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합리적 개인주의 꿈꾸는
현직 판사가 필부로서 자신의 삶 보따리 풀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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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지음/문학동네/1만3500원 |
저자 문유석은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다. 소년 시절부터 좋아하는 책과 음악만 잔뜩 쌓아놓고 홀로 살아가고 싶다고 했던 개인주의자였다. 요령껏 사회생활을 잘 해나가는 편이지만 잔을 돌려가며 왁자지껄 먹고 마시는 회식 자리를 힘들어한다. 그래서 눈치와 겉치레를 중요시하는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가 우리 스스로 불행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판사가 스스로 개인주의자라고 하다니 뻔뻔하다고 혀를 차는 이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구에서 발전시킨 민주주의 법질서를 공부하고, 이를 적용하는 일을 하는 법관에게 개인주의는 전혀 어색한 말이 아니다. 개인주의는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와는 다르다. 사회에는 공정한 룰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개인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다.
나아가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풀기 위해 다른 입장을 가진 타인들과 타협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믿는다. 무한경쟁과 서열 싸움 속에서 개인의 행복은 존중되지 않는 불행한 사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이민’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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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사진)는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합리적 개인주의로 한국적 집단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문학동네 제공 |
“가능한 한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그런 한도 내에서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고 다짐하지만 이만큼을 바라기에도 한국 사회는 그리 녹록지 않다.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늘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경쟁하며 살도록 하면서도 눈치껏 튀지 않고 적당히 살기를 강요한다. 우리는 그런 것을 사회생활이라 여긴다. 조직 또는 관계로 얽히고설켰다. 그런 풍토로부터 웬만해서는 쉽사리 벗어나기조차 어렵다. 그러기에 한국에서 개인으로 살아가기란 어렵고 외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반면 합리적 개인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배려, 사회적 연대와 공존한다. 자신의 자유가 존중받으려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 서구 사회에서 보듯이 톨레랑스, 즉 차이에 대한 용인, 소수자 보호, 다양성의 존중은 더 많은 개인들이 주눅들지 않고 행복할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 사회는 군대를 모델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상명하복, 집단 우선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의사, 감정, 취향은 너무나 쉽게 무시되곤 했다. ‘개인주의’라는 말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의 가슴에 다는 주홍글씨였다. 나는 우리 사회 내에서가 아니라 법학 서적 속에서 비로소 그 말의 참된 의미를 배웠다. 그 불온한 단어인 ‘개인주의’야말로 르네상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 엔진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 단어의 의미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 이후 겨우 한 세대,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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