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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브레니차 학살 20주년 맞아…아픈 역사 해소안돼

입력 : 2015-07-09 17:19:47 수정 : 2015-07-09 17: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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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유고연방 내전 당시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마을에서 8천여명의 무슬림이 집단 학살을 당한 사건이 20주년을 맞았으나 화해의 길을 찾지 못한 채 깊은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다.

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스레브레니차 학살의 의미를 축소시키려해온 반면 보스니아 무슬림 관리들은 내전을 종식시킨 데이턴 협정이 그들 영토 내에 세르비아계 자치를 허용한 데 대해 분노와 좌절을 품고 있다.

스레브레니차 학살에 대한 정의도 엇갈린다.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2개 국제재판소는 대량 학살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린 반면 러시아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8일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대량 학살 범죄'로 규탄한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비탈리 추르킨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는 결의안이 대립적이고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스레브레니차 주변 '킬링필드'에서는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숨기려 한 희생자 유골이 계속 발견되고 있어 유가족에게 더 큰 슬픔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최악의 잔혹 행위로 꼽힌다

희생자 유골 발굴은 1995년 7월 11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집단 살해를 생생하게 상기시켜 준다.

보스니아 전쟁이 종식되기 수개월 전이던 당시 라트코 믈라디치 장군이 이끄는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군은 동부 스레브레니차의 유엔이 정한 피란처를 점령해 남자 성인과 소년의 손을 묶은 뒤 벌판으로 끌고가 사살했다.

극소수만이 죽은 체하거나 시체 밑에 숨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기자로 현장을 취재했던 사만다 파워 유엔주재 미 대사는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분명한 사실에 대한 비토(veto)"라며 "희생자 유가족에게 고통을 안겨줬으며 안보리에 오점을 남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및 우방국 러시아는 영국이 기초한 안보리 결의안이 일방적·분열적이고 반(反)세르비아적라고 반박했다.

한편 스레브레니차 대학살 추도행사가 현지 포토카리 학살기념관에서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대통령을 비롯 전·현직 세계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11일 거행된다.

패디 애쉬다운 전 유럽연합(EU)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특사는 이번 주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된 행사에서 세계는 학살 사태가 벌어지면 또다시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제실종자위원회에 따르면 스레브레니차 학살과 관련, 수십개 공동 묘지에서 찾아낸 1만7천점의 유골로부터 6천930명의 희생자를 확인했으나 1천여명은 아직도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NYT는 전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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