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에게 불리하고 보험사에는 유리한 상품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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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부터 주요보험사들이 종신보험의 사망보험금을 선지급 받아 연금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상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으나 소비자들의 실익과 선지급 수당 등 여러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세계파이낸스는 선지급형 종신보험의 문제점을 3회에 거쳐 짚어본다.
KB생명이 지난 1일 'KB가족사랑연금플러스종신보험'을 선보였다. KB생명이 선지급형 종신보험을 출시함으로써 금융위원회의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과 관련 TF로 참여했던 4개 회사 모두 관련 상품을 선보이게 됐다.
KB생명에 앞서 지난 4월 1일 신한생명이 '연금미리받을수있는종신보험', 4월 6일 교보생명이 '나름담은가족사랑교보뉴종신보험'을 출시했으며, 한화생명은 4월 27일부터 제도성특약인 '사망보험금 연금선지급서비스특칙'을 현재 판매하고 있는 종신보험 세 가지 상품에 적용했다.
선지급형 종신보험이란 종신보험의 사망보험금을 재원으로 노후에 연금 등 생활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상품이다. 종신보험 한 상품만 가입하면 조기사망 위험과 장수리스크를 모두 대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보험사들은 조기사망과 장수리스크를 한 가지 상품만 가입하면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보험소비자들을 모집하고 있다. 보험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4월 초 선지급형 종신보험을 출시한 보험사는 기존 종신보험 대비 선지급형 종신보험 판매 수치가 3배 이상 증가했다고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선지급형 종신보험이 인기를 끌자 TF에 참석하지 않았던 삼성생명도 관련 제도성특약인 '사망보험금 연금선지급 전환 제도'를 지난 5월 18일 도입했다. 또한 TF 초기에만 참여했던 흥국생명도 상반기 중 관련 상품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선지급형 종신보험은 지난 2013년 12월부터 논의되기 시작했다. 금융위원회에서 발표한 '100세 시대를 대비한 금융의 역할 강화방안'의 세부 안건인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 중 '수요자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개인연금 상품 개발'하라는 요건이 있다. 이 요건 중 하나가 '사망보험금 선지급 상품 개발·출시'와 관련된 내용이다.
요컨대 베이비부머 등의 은퇴와 함께 고령화가 본격화되기 때문에 베이비부머들을 위한 연금상품을 개발하자는 것. 그 중에서도 '사망보험금 선지급 상품 개발·출시'는 가장 하단에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 판매된 종신보험은 사망보험금 선지급 기능이 없다. 사망보험금을 활용해 노후생활자금으로 사용하려는 수요가 있으니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결국 이 자리에서 사적연금 활성화 대신 종신보험 활성화를 논의한 셈이 됐다. 사적연금이라는 주인이 종신보험이라는 손님에게 자리를 내준 꼴이다.
보험사가 사적연금 활성화 대신 '사망보험금 선지급 상품'을 가장 먼저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네 가지 배경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어떤 상품을 판매하는가에 따라 수익이 달라지며 저축성보험보다 보장성보험의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저축성보험의 환급금을 높이라고 지속적으로 권고했다. 저금리기조에 따라 보험사들은 사업비를 축소하는 방법으로 환급금을 높였다. 사적연금인 연금보험도 저축성보험의 범주 안에 포함되며, 금융당국의 권고대로 연금보험의 사업비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반면 보장성보험은 사업비 축소에 대한 권고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종신보험은 보장성보험의 대표 상품인 동시에 납입해야 하는 보험료 규모가 가장 큰 상품이다. 즉 보험사의 입장에서 사업비를 가장 많이 차감할 수 있는 상품이다. 저축성보험인 연금보험을 판매하는 것보다 보장성보험인 종신보험을 판매하는 게 보험사 수익에 유리하다.
두 번째는 설계사를 통한 저축성보험 판매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설계사가 상품을 판매하면 보험사로부터 수당을 받는다. 수당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모집수수료다. 저축성보험 사업비 축소로 보험설계사의 저축성보험 수당도 줄어들었다. 보험설계사는 저축성보험보다 보장성보험을 판매하면 더 많은 수당을 챙길 수 있다.
또 저축성보험은 방카슈랑스 등 다른 채널에서도 판매가 가능하지만 보장성보험 중 종신보험은 설계사만 판매가 가능하다. 전속설계사 규모가 큰 보험사를 중심으로 선지급형 종신보험이 출시된 이유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이어져 이차익을 내기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는 크게 사차·비차·이차로 수익을 낸다. 사차는 보험상품을 판매, 납입 받은 보험료 대비 지출한 보험금의 차이로 남는 이익이다. 비차는 예정사업비와 실제 지출한 사업비 차이로 내는 이익이다. 이차는 보험소비자가 납입한 보험료를 보험사가 금융상품 등에 투자해 이자 등의 이익을 낸 것이다.
이 중에서 저금리로 인해 이차익을 내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비차익도 금융당국 감독하기 때문에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결국 보장성보험을 판매해 사차익을 내는 수밖에 없다.
네 번째는 IFRS4 2단계 도입으로 보험사의 건전성 평가 방식이 변경된다. 부채평가는 결산기 시장금리 등을 반영한 시가평가로 변경된다. 수익·비용 관련 평가는 보험료 수취시점이 아니라 보험기간에 걸친 위험보장 기준으로 인식, 투자(저축) 요소는 제외는 등 보험사 미래가치를 반영한 경영실적이 원가에서 시가로 바뀐다. 따라서 자산운용은 물론 판매 상품 비중도 IFRS4 2단계 도입 전에 변경해야 한다.
금리가 계속 낮아짐에 따라 IFRS4 2단계가 시행되면 저축성보험보다 보장성보험 비중이 높을 때 보험사의 건전성 평가가 우수하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보험설계사의 수익은 물론 보험사 수익과 자산평가 등 대부분의 부분에서 저축성보험을 판매할 때보다 보장성보험을 판매하는 게 유리하다. 때문에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에 연금보험이 아닌 종신보험을 가장 먼저 논의하게 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사적연금을 활성화하자고 TF를 결성했지만 결국 종신보험만 활성화시킨 셈"이라며 "금융당국의 관료들이 자리변경을 해 전문 지식이 부족한 틈을 노려 보험사 관계자들이 보험사에만 유리한 상품을 주도적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꼼수를 부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사 고위 관계자는 "금융위원회는 사적연금 활성화라는 '밑밥'을 깔아 준 꼴이 되었고 보험사는 연금으로 포장한 종신보험 '떡밥'을 던져 정보력이 부족한 보험소비자를 낚는 셈"이라며 "조기사망과 장수리스크를 가장 잘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은 사망보험금이 선지급되는 종신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아닌 정기보험과 연금보험을 함께 가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 선지급형 종신보험도 사실상 기존에 판매되고 있던 종신보험과 다른 점이 거의 없다"며 "기존 상품도 사망보험금의 일부를 연금으로 지급하는 특약이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종신보험에 붙어 있는 특약을 전면에 내세워 마치 새로운 상품인 것처럼 포장한 조삼모사식 개정 상품일 뿐"이라며 "결국 연금으로 포장한 종신보험에 가입한 소비자만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승동 기자 01087094891@segye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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