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마다 새로운 사전을 펴내는 스웨덴 학술원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性)을 나타내는 단어를 사전에 추가하겠다고 올 3월 밝혀 화제가 됐다. 학술원이 발표한 새로운 단어는 ‘hen’. 이는 ‘남자(han)’와 ‘여자(hon)’가 아닌 성을 밝히길 원치 않는 사람들을 위해 쓰이며, 당시 발표한 예정 등재 시기는 4월이었다. 고로 학술원의 정책이 아무 탈 없이 진행됐다면, 현재 스웨덴에서 ‘hen’이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을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 집필진도 ‘Mx’라는 단어를 새롭게 사전에 싣겠다고 지난 4월 발표했다. 스웨덴 학술원과 마찬가지로 ‘남자도 여자도 아닌, 트렌스젠더 혹은 자신의 성을 밝히기 원치 않는’ 이들을 위해 쓰일 단어라고 집필진은 설명했다. 외신들은 이 단어를 ‘Mix’나 ‘Mux’로 발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남자도 아닌 여자도 아닌 중립적 성을 나타내는 단어가 최근 유럽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이 같은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건 몇 년 전 이야기다. 다만, 그 단어가 사전에 등재되는 등 ‘공식적’으로 사용되거나 대중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지난 2012년, 스웨덴의 한 유명 장난감 회사가 자사 광고책자를 선보이면서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책자 속에 유모차를 끄는 스파이더맨 분장의 남자아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모형 오토바이에 오른 여자아이도 책자에 담았다. 스파이더맨과 유모차, 여자아이와 오토바이 그야말로 성과 성을 서로 섞어버린 차원의 광고였다.
스웨덴은 성 중립성을 인정한 나라다. 2010년 ‘세계 경제 포럼(World Economic Forum)’에 따르면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성 중립적인 국가다. 스웨덴 학술원의 발표도 단순한 언어변화에 그치지 않고, 문화까지 제3성 단어를 스며들게 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인 셈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공공수영장은 제3성을 위한 전용 탈의실까지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수영장은 탈의실을 신설해 올 1월 이미 개장한 상태다. 겉모습은 남녀인 사람들이 제3성이라는 이유로 같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상상하기 어렵다.
독일은 출생 신고서의 성별 기재란을 빈칸으로 두도록 2013년부터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는 아기가 자라서 나중에 자신의 성별을 직접 적게 하려는 목적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정책을 내놓기 전의 독일은 남녀 중 하나를 기재하도록 했으며, 출생 후 1주일까지 아기 성별을 적지 않으면 부모가 벌금을 내야 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제3성을 인정하는 움직임이 유럽에만 국한된 건 아니었다.
인도 선거관리위원회는 2009년 성 소수자를 위해 남녀가 아닌 제3성을 인정할 방침을 발표했다. 자신이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성전환자, 혹은 이성의 옷을 입고 흥분을 느끼는 일명 ‘성도착자’ 등을 위해 서류작성 시 제3성을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2014년에는 인도 대법원이 트렌스젠더를 제3의 성으로 인정하고 이들이 다른 인도인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AP통신은 “인도 대법원이 사회적 또는 의학적 문제가 아닌 인권적 문제를 다룬 것”이라며 “자신이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스스로 성별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네팔 내무부도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렌스젠더 등 제3성을 나타내는 단어를 표시한 신분증을 발급하겠다고 2012년 발표했다. 2007년 네팔 대법원이 성 소수자 차별을 금지하고, 제3성을 지닌 이들의 성 정체성 나타내는 신분증을 발급하라고 판결한 데 따른 것이다.

작년 4월, 호주의 성전환자 ‘노리(Norrie)’는 현지 대법원으로부터 제3성을 인정받았다. 그의 주민등록을 담당하는 뉴사우스웨일스(NSW) 주정부에 노리의 성별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성으로 등록하는 것을 허용하라고 대법원이 판결한 것이다.
남자로 태어난 노리는 성전환 수술을 받고, 2010년 주정부 출생·사망 등기소에 자신의 성별을 ‘불특정(non-specific)’으로 신고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남성이나 여성으로만 성별을 등록할 수 있다며, 등기소가 그의 신고를 거부한 것이다. 결국 노리는 자신의 성별 등록 문제를 법정까지 가져갔고, 항소심과 상고심을 거쳐 제3성을 인정받았다.
성염색체 ‘XY’와 ‘XX’로 나뉜 남녀에게 제3성을 부여한다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는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관련 기사에 달린 국내 네티즌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다른 나라의 정책을 긍정적으로 보는 네티즌들은 “성 소수자들을 위한 정책에 박수를 보낸다”고 반응을 보이지만, 부정적인 견해의 네티즌들은 “애초에 남녀로 나뉜 생물학적 성에 다른 성을 더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지적한다. 부정적인 반응의 네티즌들은 “국내 도입을 금지한다”며 ‘제3성 도입’ 정책을 강하게 비난했다.
제3성의 논점이 남녀 외에 반드시 또 다른 성을 추가하겠다는 의도가 아닐 수도 있다. 이를 두고 나오는 분석도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밝히기 싫은 마음을 반영한 새로운 성별 표기법일 수 있다'와 비슷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물론 경계는 모호하다. 자칫 동성애로도 화살이 돌아갈 수 있다. 많은 이들은 ‘왜? 자신의 성별을 밝히길 원치 않는다는 거냐?’ ‘결국 그것이 동성애와 비슷한 문제가 아니냐’ 등의 반응을 보이는 게 현실이다. 만약 우리나라 공공기관이나 국어 관련 단체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을 나타내는 단어를 새로 만들겠다고 발표한다면 네티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플리커·사우스모닝헤럴드 영상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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