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간지 ‘스켑틱’ 국내서 예상 밖 인기
범람하는 미신 거둬 들이는 계기 되길 ‘초자연성 주장에 대한 과학적 검증위원회(CSICOP)’라는 단체를 알게 된 건 수년 전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의사(擬似) 과학’을 취재하면서다. 인터넷 등에선 피라미드 안에 넣어두면 피라미드 특유의 힘 덕분에 헌 면도날이 되살아나고 과일도 상하지 않는다는 식의 믿기 힘든 주장이 그럴듯한 근거를 내세우며 책이나 관련 상품으로 절찬 판매되고 있었다. 또 물에게 ‘사랑한다’ 등의 듣기 좋은 내용을 들려준 후 이를 얼리면 물의 구조가 ‘긍정적’으로 변형돼 아름다운 결정이 만들어진다는 주장도 있었다. “정신 에너지가 물질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는 놀라운 믿음의 근거로 이 같은 주장을 담은 책은 과학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사실일지 궁금해 편집국 한쪽에 피라미드를 설치해놓고 포도, 우유, 양파를 넣어뒀는데 모두 부패했다. 또 면도날 회사에서 점검한 피라미드 속 헌 면도날은 헌 상태 그대로였다. 정말 물이 답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선 냉장 실험실 등 특수 장비를 갖춘 국립대 실험실에까지 가서 직접 주문을 외듯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아름다운 얼음 결정을 만들어보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실험을 진행한 연구원은 직접 일본 관련 연구소 측에 전화로 결정 생성 방법을 추가 문의했지만 실험 실패 이유와 해법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모두 눈앞에서 직접 확인하지 않는 한 믿기 힘든 주장인데 의외로 이러한 믿음은 정신과학 등으로 포장돼 책, 강연, 관련 상품 등으로 널리 퍼지고 있다.
이러한 유사 과학의 대다수는 해외에 뿌리를 둔 것들이다. 이 때문에 해외에선 이미 1972년부터 초자연적 주장을 검증하는 CSICOP가 발족해 활동하고 있었다. 2012년 타계한 뉴욕대 폴 커츠 교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 단체는 과학적인 관점에서 초자연적인 주장을 비평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지원하며, 그러한 결과를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전파하고, 대중을 계몽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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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디지털뉴스팀장 |
CSICOP 같은 단체의 노력에도 과학문명 발전 속에 유사 과학은 더욱 정교해지며 각종 상술과 결합해 그 뿌리가 더 깊어지고 있다. 이를 따져야 할 언론은 오히려 선정적 주제에 끌려 비과학적 정보를 쏟아내는 지경이다.
유사 과학의 범람 와중에 지난 3월 나온 과학계간지 ‘스켑틱(회의주의)’ 창간호가 예상을 뛰어넘는 호응을 얻어 고무적이다. 스켑틱은 CSICOP와 같은 맥락에서 생겨난 미국 스켑틱협회가 1992년부터 발간하고 있는 잡지의 한글 번역판이다. 초자연적 현상과 사이비 과학, 유사 과학, 그리고 모든 종류의 기이한 주장들을 검증하고, 비판적 사고를 촉진하며, 건전한 과학적 관점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발간 열흘 만에 초판 4000부가 팔려나가 추가로 찍은 2쇄 2000부, 3쇄 2000부 모두 매진됐다. 주로 2년인 장기 구독 계약자도 1300명이나 모여들었다고 한다. 스켑틱을 펴낸 바다출판사 김인호 대표는 “대중 월간지라면 더 많이 펴내기도 하겠지만 계간지는 특히나 안 팔리는 게 정설이어서 뜻밖의 성적”이라며 “시장에 안착하면 종이잡지에서 끝낼 게 아니라 온라인판을 만들어 영역을 보다 확장하려 한다”고 말했다. 부디 회의주의가 우리 사회의 미혹(迷惑)과 미신(迷信)을 조금이라도 더 거둬들이길 바란다.
박성준 디지털뉴스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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