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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모든 것이 멈춰서… 엄마 하고 달려올 것만 같아”

관련이슈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입력 : 2015-04-12 20:56:18 수정 : 2015-04-13 09: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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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년, 리멤버 0416] 잠 못 드는 실종자 가족들
지난 7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허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51)씨와 박은미(45)씨가 ‘세월호 속에 있는 9명의 실종자를 꺼내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모습. 이들은 ‘청와대 앞이라 2명이 함께 서 있을 수 없고 1명만 서 있어야 한다’는 경호원의 제재에 대해 “세월호는 정부가 규정대로 해서 침몰한 것이냐?”며 강한 반감을 나타냈다. 이재호 기자
“저는 아직까지 2014년 4월16일입니다. 거기서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았어요. 우린 그 시간을 계속 살고 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해 4월16일 이후 아직 물 밖으로 나오고 있지 못하는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45)씨는 돌아오지 못한 딸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9일 청와대 분수대 앞 1인 시위 현장에서 만난 박씨는 몹시 지친 모습이었다. 1인 시위 피켓을 들고 채 20분을 서 있기가 어려워 남편 허흥환(51)씨와 교대를 해야만 했다. 신경 섬유종 진단을 받은 박씨는 머릿속에 작은 종양이 7개가 발견됐지만 병원도 가지 않고 딸을 기다리고 있다. 박씨는 “이명이 심해 귀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머리가 깨져버릴 듯 크게 들리다가 고막이 부풀어서 ‘펑’하고 터져버릴 것 같다”며 “걸음도 내 마음대로 걸어지지 않고 수시로 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박씨에게 이명보다 더 힘든 건 이따금 들려오는 환청. “엄마,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올 때면 다윤이가 가슴속에 있는 것만 같다. 박씨는 “다윤이가 가슴속에 있는 것만 같아 가슴을 절개해서 들여다 보고 싶어진다”며 “어서 세월호를 인양해 딸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세월호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그 중에서도 실종자 가족들은 아직 두 눈으로 시신을 확인하지 못해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박씨처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박씨는 “하교시간이 되면 나를 부르며 집으로 올 것 같은데 애가 오지 않아서 집앞에 나가보면 다른 집 아이들은 다 오는데 다윤이는 안 온다”며 “해가 저물고 밤이 깊을 때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아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고 말한 뒤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도 말라버린 박씨는 그저 꺽꺽 울음소리만 삼켰다가 토해냈다.

◆“문소리가 ‘철컥’ 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허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씨

이런 박씨를 남편인 허씨는 근심스런 눈으로 바라봤다. 허씨는 최근 삭발식에서 머리를 밀어버려 눌러쓴 베레모와 귀밑머리 사이에서 까슬까슬 새머리가 돋고 있었다. 허씨는 양 볼이 깊게 패어 안색이 아주 좋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 2월 말부터 매일 오전 11시에서 정오까지 청와대 분수대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허씨는 “집에 있을 때 문이 ‘철컥’ 하고 열리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며 “특히 하교시간이면 다윤이가 나를 부르며 뛰어올 것만 같아서 견딜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단원고 2학년2반 친구들 모두가 살아서 혹은 죽어서 세월호를 나왔는데 다윤이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다윤이는 수색 종료 며칠 전 허씨가 진도체육관에 있을 때 꿈에 나왔는데 아빠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허씨는 “같은 반 아이들이 다 나왔고 활동 반경이 비슷했기 때문에 다윤이도 나올 줄 알았는데 끝내 나오지 못해 절망감이 컸다”며 “다윤이는 사망확인이 안됐고 실종상태이기 때문에 서류상으로 살아있다”고 말했다.

다윤양의 언니 서윤씨 이야기를 하면서는 허씨도 울음을 참지 못했다. 어느 날 서윤씨가 연락도 없이 사라져 친구들에게 수소문을 했더니 서윤씨가 다윤양이 다니던 단원고 2학년2반에서 혼자 울고 있었던 것. 허씨는 이 말을 친구들로부터 전해듣고 가슴이 무너졌다. 평소에는 다윤양을 기다리는 부모를 걱정해 씩씩한 모습만을 보이던 서윤씨였다.

허씨는 “이제 남은 건 선체인양뿐인데 1년이 지나도록 인양할지 결정도 못 내렸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며 “애비로써 할 수 있는 건 뼛조각 하나라도 찾기 위해 끝까지 가는 것뿐이다”고 말했다.

◆“유가족이 되고 싶다” 조은화 양 아버지 조남성씨

“우리는 유가족이 되고 싶다. 바라는 것은 오직 은화가 유실되지 않고 돌아오는 것뿐이다.”

2학년1반 조은화 양의 아버지 조남성(52)씨는 딸에게 다정하지 못한 아빠였던 것을 매일같이 후회하고 있다. 조씨가 갖고 있는 은화 양의 사진이라고는 여행가기 전날 사준 핸드폰을 찾아 복원한 사진 달랑 하나뿐이다. 조씨는 “은화가 공부를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잘하고 착한 딸이라 항상 주변에서 한턱 쏘라고 할 정도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좀 놀게 내버려 둘 걸 하는 생각이 든다”며 “평일엔 내가 일하느라 새벽같이 나가서 밤늦게 들어가고 주말엔 애들 학원가고 하느라 여행 한 번 못 다닌 게 아쉽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16일 세월호가 침몰하고 진도로 내려갔다가 수색 종료시점인 11월14일에야 안산으로 다시 올라온 조씨는 하루가 급하다. 선체를 빨리 인양해서 딸을 만나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조씨는 “정부가 ‘선체 인양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적극 검토할 게 아니라 하루빨리 인양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며 “7월이면 태풍도 올 텐데 그 전까지 마치려면 지금이라도 당장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위한 상담치료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조씨는 치료를 받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는 심리상담사를 만나본 적이 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누군지 이름도 모르고 연락이 온다고 해도 만나러 갈 생각도 없다”며 “내 새끼를 잃었는데 애부터 찾고 치료를 하든지 해야지 지금은 상담치료를 받는다고 나아질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동생 가족을 잃은 권오복씨 “보상금 운운하는데 나는 직계가 아니라 보상도 못 받아”

세월호 참사로 동생 내외와 조카를 잃은 권오복(60)씨는 아직까지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대낮부터 술을 마셨는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권씨의 목소리에서 짙은 술냄새가 났다. 지난해 4월16일 권씨의 동생 권재근씨 식구네 명이 세월호에 탑승했는데 재근씨의 큰아들인 혁규 군은 동생인 지연 양을 구조한 뒤 실종됐고, 재근씨 역시 실종됐다. 재근씨의 부인인 한윤지씨는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권씨는 “생업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1년째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데 동생과 조카를 내 두 눈으로 보기 전에는 떠날 수 없다”며 “혼자 남은 조카 지연이를 보면 얘가 어떻게 살아갈까 한숨밖에 안 나온다”고 토로했다.

이런 권씨에게 가끔 ‘보상금으로 얼마를 받느냐’는 등의 질문을 받을 때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권씨는 “‘보상금 받으려고 한다’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하곤 하는데 나는 직계가 아니라서 보상금도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권씨는 “동생 부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선체인양이 시급한데 7월에 태풍이 오기 전에 인양 작업을 하려면 최대한 빨리 대통령이 세월호 인양 선언을 해야 한다”고 취한 목소리로 반복해서 읊조렸다.

이재호·김건호 기자 futurnali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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