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최근 들어 음식 관련 방송에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여성 요리전문가 시대에서 남성 요리사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엔 특정한 음식을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특정 전문가를 찾아 다니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절대 레시피(recipe)’라는 것도 인터넷 등에 널려있는 시대인데요. 이제 음식 방송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이자 오락이며 트렌드인 동시에, 요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이 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요리 잘하는 남자가 섹시하다”는 말처럼, 음식 방송의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요섹남(男)’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 봤습니다.
#. 직장인 김모(34)씨는 최근 음식 방송에 푹 빠졌다. 블로그에 소개된 맛집을 찾아 다닌 적은 있었지만, 손수 요리하는 것엔 별다른 흥미가 없었던 김씨는 최근 회사 근처 백화점 문화센터 요리과정에 등록했다. 그는 “음식 방송에 출연한 남성들의 화려한 요리실력을 보면서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케이블채널 tvN ‘삼시세끼 어촌편’의 차승원이 만드는 요리는 매회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홍합 짬뽕을 시작으로 ▲누룽지탕 ▲계란말이 ▲콩자반 ▲꽃빵 ▲채소볶음 ▲거북손 무침 등 다채로운 음식들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게다가 ▲수제 핫바 ▲케첩 ▲오렌지 마멀레이드잼 ▲식빵 등 불가능할 것 같은 제작진의 주문도 척척 해결해내면서 시청률도 치솟았다. 지난 13일 방영된 마지막 방송(8화)에선 회전초밥까지 만들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배우 차승원의 ‘차줌마(차승원+아줌마)’ 파급력은 상당했다. 삼시세끼 어촌편의 공식 페이스북엔 최근 “인터넷에 차승원을 검색해봤다”라는 글과 함께, 휴대전화 검색 화면을 캡쳐한 사진이 올라왔다.
이를 보면 우선 음식 사진이 눈에 띈다. 멋지게 세팅한 식탁(테이블)을 찍어 놓은 사진도 있는데, 신선한 재료에 갖은 양념을 비비고 있는 비닐장갑을 낀 손은 남성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차승원이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비닐장갑을 낀 채 부엌을 종횡무진한 결과로 보여진다.
실제 TV를 보던 남자들은 주방으로 가 차승원의 레시피를 따라 하면서 온몸으로 배웠다. 속칭 “요리 좀 해봤다”라는 남자들은 차승원의 레시피에 자극 받아 가스레인지의 화력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 시청자들도 유명한 ‘스타 요리사’가 방송가를 휘어잡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차승원의 ‘뚝딱 요리 실력’에 반했다. 극중에서는 잔소리도 많고 바깥 양반인 참바다(유해진)씨를 주눅들게 하는 기가 센 아내지만, 결국 따뜻한 밥 한 끼에 진심을 담아 내놓는 차승원의 상차림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다시 말해 “요리하는 남자, 너무 멋있어!”라고 입을 모으는 요즘 젊은 여성들의 인식엔 차승원도 한 몫 한 것이다.
이처럼 요리하는 남자가 각광받는 것은 사회적인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대중문화 전문가는 “한국 사회가 양성화되면서 요리는 물론 가사일을 도와주는 부드러운 남성에 대한 호감도가 급증하고 있다”며 “여성은 물론 남자들도 따라 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고 있다”고 전했다.
왜 대중은 이 같은 음식 방송에 열광하는 것일까.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들은 “목적 지향적 삶을 추구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공감대 형성을 최우선으로 한다”며 “요리하는 남자는 여성들에게 편안함은 물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른바 ‘차줌마 붐’이 일며 요리도구를 구매하는 남성이 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남성이 주축이 된 음식 방송이 인기를 끌면서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 요섹남이 늘고 있어서다.
최근 오픈마켓 G마켓은 큐레이션 쇼핑사이트인 <G9>에서 지난달 조리도구를 구매한 남성고객 숫자가 전년 동기 대비 72%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음식 재료를 쉽게 다져주는 채소·마늘 다지기를 구매한 남성은 전년 대비 3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채칼 ▲슬라이서 ▲앞치마 ▲주방장갑 구매 고객 수도 각각 17%, 15% 증가했다.
이 같은 남성의 요리붐은 단순 조리도구뿐만 아니라, 제빵·제과 도구 구매로도 이어지고 있다. 재료 양을 측정할 수 있는 계량 스푼·컵은 지난해보다 27%, 조리용 온도계는 24% 가까이 판매량이 증가했다. 빵이나 쿠키를 구울 때 눌러 붙지 않고 잘 떨어지도록 하는 테플론시트·베이킹매트 구매는 작년 대비 5배 이상 급증했다. 뿐만 아니라 한식이 아닌 새로운 음식을 해 먹으려는 수요도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홍순철 G마켓 홍보실 차장은 “중화소스·굴소스·두반장 등 중식용 소스 판매는 전년 대비 242% 증가했다”며 “파스타 소스 판매도 109%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오픈마켓 뿐만 아니라 온라인쇼핑몰의 주방용품 남성 구매 비중도 증가세를 띠고 있다.
AK몰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즉석요리 및 통조림·커피믹스·냉동식품 등 가공식품군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24% 감소한 반면 ▲잡곡 ▲천연조미료 ▲각종 장류 등 신선식품군 매출은 46% 증가했다. 또 주방용픔 및 식기 매출도 2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방용품 매출은 여성보다 남성고객의 매출 신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지난 2월 한달간 주방용품 및 식기 카테고리에서 여성 매출이 전년대비 36% 증가하는 동안 남성 매출은 130% 급증했다. 같은 기간 신선식품 매출은 남성이 39%, 여성이 37% 신장해 동등한 증가세를 보였다.
김재욱 애경 홍보실 대리는 “지난해까지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른 간단한 즉석가공식품 매출이 강세를 보였다면, 올해는 집에서도 제대로 요리를 해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 관련 매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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