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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 대기’(克己 大器)의 교훈이 걸린 서울 동대문구의 전동중학교 본관 현관. 지역사회에서 ‘의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학교다. |
그릇을 ‘사람의 크기’의 비유 또는 상징으로 쓰는 것은 동아시아 3국, 즉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이 마찬가지다. 이는 키 체중 같은 몸의 크기보다는 마음의 크기를 이르는 개념이다. ‘키는 작아도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한다. 유명한 사자성어 ‘대기만성(大器晩成)’에서 온 말이다. ‘큰 사람은 늦게 이루어진다’고 푼다. 역사가 빚은 고사성어다.
그 大器가 원래 ‘사람’을 넌지시 이른 말이 아니고, 晩成도 ‘오래 걸려 만들어진다’는 뜻이 아니었다는 사실에는 좀 당황스럽겠다. 말과 글의 전주(轉注)는 역사처럼 흐르며 숱한 이야기와 이미지를 만든다. ‘전주’는 구르고[轉] 흐르는[注] 것이라는 문자학의 개념이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대방무우 대기만성 대음희성 대상무형)”이라는 대목이 있다. ‘큰 네모는 귀퉁이가 없고, 큰 그릇은 더디 이루어지며, 큰 소리는 희미하고, 큰 형상은 모양이 없다’는 뜻이다. 大器는 ‘대방’, ‘대음’, ‘대상’과 함께 노자가 도(道)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한 ‘도구’ 개념들인 것이다. 시(詩) 또는 선(禪)과도 같은 비유다.
4마디 뜻 함께 살피면 만성은 ‘오래 걸린다’가 아닌 ‘이루기 어렵다’로 읽힌다. 높은 이치인 道를 이루기가 쉬울까? 晩자 또한 ‘해가 저물다, 늦다’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다. ‘오래 걸린다’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나중에 왕충이란 후한시대 학자가 ‘논형’(論衡)에서 쓴 대기난성(大器難成)이 이런 ‘노자 읽기’를 뒷받침한다. ‘어렵다’[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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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말을 구사하는 정치인이 더 반듯해 보이는 이유를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국회 본회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
그 큰 그릇 말고도 흉금(胸襟)처럼 아예 가슴을 사람의 마음에 비기는 말들도 있다. 胸은 신체부위 중 가슴을 이르는 말이고, 襟은 ‘옷깃’의 뜻으로 가슴속이나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다. 앞가슴 여미는 옷깃이면서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나타내는 말인 것이다.
길이 재는 자와 부피 재는 되를 이르는 도량(度量)이 ‘너그러운 마음과 깊은 생각’을 뜻하고, 어떤 상황의 크기를 (되로) 헤아린다는 국량(局量)이 ‘남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마음’으로 쓰이는 것과도 흡사하다. 배포나 아량, 회포와도 느낌 비슷한 아름다운 말들이다.
원래 道를 말하던 큰 그릇이, 그 뜻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담는 그릇의 역할로 뿌리 내린 것이다. 그런 ‘그릇’ 중의 중요한 개념이 금도(襟度)다.
금(襟)은 옷 의(衣)자의 다른 글자체인 衤[의]자와 (하지 못하게) 막는다는 뜻 금(禁)자의 합체다. 끈으로 저고리 앞섶이 풀어 헤쳐지지 않도록 막는(여미는) 것을 상상하면 될까? 그래서 뜻이 옷깃이다. 옷깃으로 섶이 여며진 저고리는 자연스럽게 그것이 감싼 것, 즉 ‘가슴’이 되고 이내 ‘가슴에 품은 생각’의 뜻으로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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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이 만인이 보는 자리나 언론 앞에서 비뚤어진 언사를 벌이면 이는 국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도 최근의 행보로 그런 지적을 많이 받았다. 사진은 총리 지명 발표 직후 환하게 웃는 이 후보자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
도(度)는 기량(氣量)이나 국량(局量)과 같이 ‘그릇 크기를 잰다’는 뜻에서 시작해 제도나 법도와 같은 의미까지를 품는 단어다. 도리(道理)와 같이 의당 해야 할 일 등의 의미로 일상에서 쓰는 도(道)와 흔히 헷갈리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이 이 금도를 ‘금하는(지켜야 하는) 도리’로 착각하는 이유일 것이다. 전문가들이나 언론이 때때로 지적하지만, 이런 혼동은 그치지 않는다. ‘남을 넉넉하게 품는 큰 아량’을 이르는 아름다운 이 말이 ‘금도를 벗어났다’, ‘금도를 넘었다’ 따위의 말로 유치한 정치판 싸움에 동원되어 굴욕과 수모를 뒤집어쓰는 것이다. 틀린 말이다.
대통령 향한 ‘각하 삼창(三唱)’으로 “시대착오적 생각의 소유자”라는 평판을 들은 이완구 의원이 국무총리 후보가 되어 벌이는 행보를 시민들은 그의 언사(言辭)와 더불어 주목한다. 이 후보는 물론 그를 둘러싼 여야 정치인들이 “금도를 벗어났다”라는 비틀린 말로 벌이는 공방전은 매번 정치적 이슈가 떠오르는 상황의 신호탄과도 같다. 바르지 못한 조잡한 말로 벌이는 ‘싸움’이 어찌 제 역할을 하랴? 금도와 각하뿐이 아니다. 최소한, 말이라도 올바른 이를 보고 싶은 생각은 헛된 꿈인지?
말은 생각의 그릇이다. 바르고 커야 한다. 자신을 극복해야 비로소 가능할 터, 克己라야 大器다. 그 큰 그릇은 사람이기도 하고, 道이기도 하다. 더러운 그릇이 무슨 소용이랴? 뜻 새겨가며 말하고 바르게 행하라.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kangshbad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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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器) 글자의 어원. 입 구(口)자 4개와 개 견(犬)자의 합체다. 무슨 내역을 가진 글자일까? 이락의 저서 ‘한자정해’의 삽화를 인용했다. |
器자는 입 구(口)자 4개와 개 견(犬)자를 합쳤다. 口와 犬은 문자 초기 갑골문시대 글자다. 갑골문 다음 시기인 금문(金文)시대에 器로 합체한 것으로 추정한다. 금문은 제사 지낼 때 쓰는 종(鐘)과 솥[정(鼎)] 등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라고 하여 ‘종정문’이라고도 한다.
입과 개 글자의 이런 합성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개가 (입으로) 잘 짖는 성질을 표현한 글자였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그릇의 뜻이 됐다는 풀이도 있다. 또 4개의 口는 제기(祭器)였고, 개는 제물이었다는 풀이도 있다. ‘제물그릇’이 그릇이 된 것이다.
원래 口자는 먹거나 말하는 입이 아니고, 신(神)에게 제사할 때 “비를 내려 주소서” 등의 기원, 즉 축문(祝文)을 담는 상자의 상징으로 풀기도 한다. 일본의 문자학자 시라카와 시즈카의 설(說)이다. 제사와 관련한 문자라는 풀이와도 맥이 통한다.
스스로[自] 그러함[然]의 큰 세상, 자연(自然)을 이르는 큰 개념 중 한 글자인 然은 고기[육(肉)], 개[견(犬)], 불 화(?, 火와 같은 자)의 합체다. 불에 구운 개고기가 ‘그러하다’의 뜻이 된 내역은 뭘까? “개불고기가 역시 맛이 좋아!”라는 말의 대답 “그럼, 그렇고 말고!”에서 ‘그렇다’는 뜻이 생겼다는 주장(진태하 박사)도 있다. 또 器의 개와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인류에게는 역사도 있지만, 신화도 있다. 역사는 사람이 살아온 흔적 중 극히 최근의 일부일 뿐, 오늘의 잣대로 역사를 재면 안 된다. 더구나 ‘순수의 시대’인 신화의 시기는 당연히 신화의 마음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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