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영업사원이 부당영업 실태를 본사에 고발했다가 대리점주에게 보복해고를 당했다는 보도
(세계일보 1월27일자 참조)가 나간 이후 ‘대리점’ 영업사원들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제보가 잇따랐다. 대리점 영업사원은 본사 정직원인 ‘직영점’ 영업사원과 다르게 ‘사실상 노동자’이면서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은 과당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한국지엠쉐보레’의 대리점에서 일하는 김환영(45)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김씨는 지난해부터 대리점 영업사원들의 권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씨의 사례를 통해 대리점 영업사원이 놓인 현실을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했다.

고객은 자신의 요구사항을 막힘없이 늘어놓았다. 10명 중 6∼7명은 이런 서비스를 당연히 받아야 한다는 듯 말한다. 서비스를 원하지 않는 고객은 그에 상응하는 현금 할인을 요구한다. 원하는 것을 다 해주려면 차 한 대 팔아서 받는 100만원 남짓한 수수료를 다 내줘야 한다. 월급을 받기 위해 월급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다.
“정해진 서비스 외에는 해 드릴 수 없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고객이 차를 사지 않을 것을 각오하고 한 말이었고, 예상대로 고객은 구매를 거부했다. 지난해 4월까지는 나도 30만∼40만원 수준의 서비스를 하면서 차를 팔았다. 이제 과다 할인을 해 주지 않는 이유는 ‘최** 사건’ 때문이다.

전국의 영업사원들이 게시판을 통해 부당영업에 대해 항의해 문제가 커지자 대리점주는 “당신 때문에 입장이 곤란해졌다”며 최초에 문제를 제기한 동료를 해고했다. 동료는 대리점을 관리하는 지역별 판매대행사와 본사에 항의했지만 “해고 권한은 점주에게 있으니 우리와는 상관없다”는 말을 들었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동료는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있다.
동료가 일방적인 해고를 당했으면서도 아무 보호를 받지 못한 이유는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점주와 사업자 대 사업자로 계약을 맺고 일한다. 차를 한 대 팔면 판매대행사에서 주는 수수료 40%를 점주가 갖고, 나머지를 영업사원이 갖는다.
사업자이기 때문에 기본급이 없고 4대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다. 점주가 오늘이라도 계약해지를 통보하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대리점을 떠나야 한다. 점주의 실적압박에 월급으로 가져가야 하는 수당을 떼어내 과다할인을 해가며 차를 팔다 보면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 생활고에 시달리기 일쑤다.
우리가 과연 개인사업자일까? 실상은 ‘사업자의 탈을 쓴 노동자’다. 철저하게 점주의 통제 속에서 일한다. 우리는 아침마다 영업소에 모여 체조를 한 뒤 청소를 하고 조회를 한다. 차를 잘 팔지 못하면 점주가 불러 면담을 한다. 점주는 판촉행사를 만들어 참여하라고 한다.
차를 많이 팔아야 판매대행사로부터 지원금을 더 받을 수 있는 점주들은 각종 과당경쟁에 뛰어든다. 인터넷 판매가 대표적이다. 인터넷 홍보를 통해 차를 판매하면 부산에 있는 대리점이 서울에 있는 고객에게 차를 팔 수 있다. 지역별 대리점이 소용없게 되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인터넷 판매는 수익을 적게 남기고 많이 파는 ‘박리다매’ 형식이다. 일부 대리점이 다른 대리점이 판매할 몫까지 싹 쓸어 갈 수 있다. 판매대행사 등은 이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인터넷 판매를 금지하면서 실제로는 묵인하고 있다.
일부 점주들은 영업사원이 아닌 사람까지 영업에 동원한다. 잠재적 고객인 차주를 자주 대하는 자동차 정비소 직원이나 사람을 많이 만나는 보험 영업사원을 활용하는 식이다. 점주들은 이 같은 ‘외부 딜러’가 차를 팔아오면 영업사원의 실적으로 올려 수당을 받은 뒤 수당이 나오면 외부 딜러에게 전한다. 영업사원들은 자신이 받지도 못하는 수당이 소득으로 잡혀 세금을 더 내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영업사원이 팔 수 있는 차량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는 이렇게 ‘과당경쟁의 정글’에서 모든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지난해 내가 판매한 말리부에 결함이 생겨 본사가 이를 인정하고 반품했더니 내가 다른 차를 팔아서 받은 수수료를 점주가 다시 가져갔다. 차량 결함은 생산과정의 문제이고,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내가 차를 팔려고 했던 노력을 보상받지 못했다. 나는 부당하다고 느껴 본사를 상대로 가져간 수수료를 다시 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사람들이 집 외에 두 번째로 소중하게 여기는 재산을 판다는 생각으로 자동차 영업을 해온 나는 고객들의 반응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점주와 본사로부터 우리의 권리를 찾고, 고객에게 당당하게 차를 팔아야겠다는 생각에 단체 결성을 제안했다. 60여명이 참여의사를 밝혀 지난해 8월 조합을 만들었다. 영업사원 200여명이 가입했다. 사업자의 탈을 벗으려는 우리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됐다.
오현태·이지수 기자 sht9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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