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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시골 마을의 과학 훈장님, 이창규 명예교수

입력 : 2015-01-30 20:53:56 수정 : 2015-01-30 21: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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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원주서 무료 과학교실 운영 이창규 강원대 명예교수
“손자뻘 아이들과 과학실험 재미 푹 빠져, 아내도 퇴직하면 함께 실험실 운영할 것”
“어릴 때부터 과학적 소양을 키워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사리손으로 실험하는 아이들을 보면 하루 해가 어떻게 가는지 몰라요. 지금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이창규(68) 강원대 명예교수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 집에서 무료 과학교실인 지혜탐구창고를 운영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에 위치한 지혜탐구창고는 마을에 사는 초등학생들이 실험을 통해 과학자의 꿈을 키우고 있는 곳이다.

이창규 강원대 명예교수가 30일 고향집에 마련한 실험실에서 수치개념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원주=박연직 기자
2012년 8월 강원대 화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이 명예교수는 곧바로 시골마을로 돌아와 실험실을 마련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손자뻘되는 어린 학생들에게 기초 과학지식을 알려주고 있는 이 명예교수를 30일 만났다.

그가 고향에 돌아온 것은 어릴 적 동네 어른들 때문에 공부할 수 있었던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그는 6·25전쟁 때 피난 갔다 오면서 오른쪽 무릎을 크게 다쳤지만 가난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평생 장애를 갖게 됐다.

“아버지는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못하게 했습니다. 똑똑한 애가 공부를 하면 평생 장애를 원망하며 살 거라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아버지 몰래 다리를 절며 시골 논둑길를 걸어 학교에 갔어요. 장애를 가진 자그마한 학생이 1.5㎞가 넘는 거리를 걷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논에서 일하는 동네 어른들이 매일 업어서 학교까지 데려다 줬어요.”

이 명예교수는 미국 유학 후 강원대에서 화학을 가르쳤다. 교수 재직기간 중 학생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주력했다. 학생들에게 한 학기에 10번의 시험을 보게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시험은 꼭 야간에 치렀다. 수업시간에 시험을 보면 진도를 제대로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명예교수인 지금도 시험 횟수는 여전하다. 영어실력이 미흡한 학생들을 위해 ‘0교시’(정규수업 시작 전에 하는 수업) 영어수업을 수년 동안 진행하기도 했다.

강원대 재직기간 중 그는 고향 후배들을 초청해 대학, 과학관, 관공서, 언론사 등을 견학시키며 꿈을 심어줬다. 1996년부터 진행된 1박2일 견학프로그램은 그가 정년퇴직할 때까지 진행했다. 경비는 모두 이 명예교수가 부담했다.

퇴직 후 고향마을에 정착한 그는 실험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어릴 적 접한 과학이 어린이들의 인생을 바꿔줄 거라고 믿고 있다. 특히 과학적 사고를 통해 수치개념을 심어주는 데 초점을 맞춰 진행하고 있다. 수치에 익숙하면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명예교수의 설명이다.

“유학시절 교수와 동료 학생들의 정확한 수치개념에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흔히 거리를 얘기할 때 ‘조금만 가면 돼’ 이런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외국인들은 ‘몇 미터가 남았다든가 몇 킬로미터를 가면 돼’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정량화되고 수치화된 사고를 할 때 노벨상에 근접할 수 있어요.”

이 명예교수가 만든 실험실은 각종 기구와 시약 등을 구비해 웬만한 실험은 가능하다. 하지만 실험실 하면 위험하다며 지레 겁을 먹는 학부모들을 위해 학생들과는 안전한 실험을 주로 한다. 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초와 소주, 꽃잎 등을 이용해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코스모스 잎에서 색소를 추출하는 실험을 하면 어린이들이 ‘와’하고 탄성을 질러요.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는 꼭 과학노트를 작성하게 하고 있어요. 과학에 대한 관심과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한 방법입니다.”

이 명예교수의 실험실 옆에는 지혜탐구사랑방이라는 공간이 있다. 이곳에는 동화책은 물론 전문서적, 소설책 등 2000여권의 책이 빼곡히 꽂혀 있다. 마을사람들이 언제든지 들러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이름도 그래서 사랑방이라고 했다.

기자가 찾은 이날 이 명예교수는 학생들에게 글짓기를 가르치고 있었다. 동화책을 읽은 후 핵심단어를 찾아내고, 핵심단어를 이용해 새로운 글을 쓸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었다.

“실험실에서는 비커와 플라스크의 차이점, 눈금 읽는 법 등 아주 기초적인 과학개념부터 실험결과를 글로 쓰는 방법 등 아이들이 과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이 실험실에서 과학을 배운 학생 중 한 명이라도 우리나라와 세계를 이끌어가는 과학자가 나왔으면 합니다.”

이 명예교수는 올해 실험결과를 데이터화해 학생들이 과학경진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작은 성과를 이룬 학생들이 꿈을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서다.

이 명예교수는 강원대 과학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아내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어 실험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아내가 퇴직하면 같이 시골 아이들을 위해 실험실을 운영할 계획이다.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미래의 과학자를 길러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원주=박연직 기자 repo2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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