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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호씨전집해’라는 책에 찍힌 어보.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한 책임을 표시하고자 ‘선사지기’(宣賜之記)라는 어보를 썼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
조선시대에 어보는 왕위 계승, 권력 이양, 세자 등 책봉(冊封), 외교문서 제작·발송 같은 행정·외교의 여러 의례에 사용됐다. 왕비나 왕세자, 왕세자빈을 책봉할 때도 각각 ‘왕비지보’(王妃之寶), ‘왕세자인’(王世子印), ‘왕세자빈지인’(王世子妃之印) 등을 새겼다. 전임 국왕의 행적을 기리는 호칭을 뜻하는 시호(諡號), 전임 국왕에게 바치는 칭송의 호칭인 존호(尊號) 등을 만들어 바칠 때도 그 내용을 어보로 제작했다.
어보가 꼭 거창한 목적을 지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국왕이 신하나 백성들에게 하사한 책임을 표시하기 위해 찍은 ‘선사지기’(宣賜之記)처럼 지극히 실무적인 용도의 어보도 있었다. 임금이 내린 명령을 적은 교서에 찍은 ‘시명지보’(施命之寶), 국왕이 직접 쓴 글씨 옆에 찍은 ‘규장지보’(奎章之寶) 등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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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대한제국 선포에 따라 제작한 ‘황제지보’(皇帝之寶). 왕국에서 황제국으로 한 단계 격상하면서 그만큼 높아진 군주의 권위를 반영하고자 만들었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
하지만 1910년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은 고작 13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 시절의 어보는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꿈을 기어이 접어야 했던 왕실의 분루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국립중앙도서관 관계자는 “어보를 통해 조선시대 왕실문화를 조명하고자 이번 전시회를 기획했다”며 “옛 문서와 책에 남겨진 어보의 흔적을 통해 법치국가 조선의 행정과 외교가 어떤 절차를 거쳐 이뤄졌는지, 임금과 왕실의 권위를 어떻게 유지하고 관리했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회는 3월30일까지 도서관 6층 고전운영실에서 열린다. (02)590-0504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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