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서 이웃이 사라진 건 고등학생 때 이후 집이 몇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다. 결혼 전 2년간 살았던 아파트에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학교 동창이나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이들과는 시시때때로 만나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도 정작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과는 안면조차 트지 못했다.
유태영 국제부 기자 |
변화가 생긴 건 여름에 아이가 태어난 이후다. 보채는 아이를 안고 복도를 서성거리며 달래다 보면 이웃과 마주치는 일이 생기곤 했다. “아들인가요, 딸인가요.” “몇개월이나 됐나요.” 단순한 대화가 몇 번 오가고 나서 같은 층에 아직 돌이 안 된 신생아가 5명이나 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내는 이내 이웃 아기 엄마들과 친해졌다. 출근해서 일하다 보면 아내한테서 ‘오늘은 쌍둥이네서 놀다 왔어’, ‘△△이네랑 같이 산책 갔다 왔어’라는 문자메시지가 오곤 한다. 첨부된 사진에는 아이가 두 살짜리 옆집 누나 앞에서 장난감을 빼앗길까봐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웃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자 고된 육아생활에 지쳐가던 아내도 활력이 생기는 듯했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못 보던 장난감이나 처음 보는 음식이 놓여 있기도 했다. “우리 애는 이제 이거 안 갖고 놀아요.” “친정 어머니가 왔다 가셨어요, 한 번 드셔 보세요.” 이웃이 두고 간 것들이다.
먹고살기 바쁘다, 세상이 각박해졌다, …. 모두 입에 발린 핑계임을 깨달았다. 그저 환한 미소와 “안녕하세요” 한마디면 삶이 이렇게 풍부해질 수 있는데.
유태영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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