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발생한 사건 분석

최근 10년간 우리 사회에서는 모두 9건의 촉탁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판결문 분석결과 전체 사건의 절반에 달하는 피해자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질병 등의 고통을 해결할 길이 없어 마지막 선택지로 죽음을 택했다.
특히 막다른 골목에서 타인의 손을 빌려 죽음을 선택한 노년층의 사연 속에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실종돼 있었다.

◆최근 10년간 9건 나타난 촉탁살인… 올해만 4건 발생
12일 세계일보가 2003년부터 올해까지 10여년 동안 촉탁살인을 분석한 결과 모두 9건이 발생했고 올해에만 4건이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보면 촉탁살인은 2003년 1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매년 1건씩 발생하다 올해 들어서만 4건이 발생해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는 부부가 4건으로 가장 많았고, 연인이 3건, 친구 또는 지인이 2건으로 분석됐다. 촉탁살인 9건 가운데 직업을 가진 경우는 1건(회사원)에 그치는 등 대부분 피해자는 직업이 없었다.
촉탁살인 가해자들은 범행 후 자수하는 경향을 보였다. 범행 원인은 9건 중 7건이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은 상황이거나 지병이 악화한 경우였다. 형법 252조에 따르면 촉탁을 받아 살인을 저지른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가해자들은 왜 이런 처벌을 감수하면서 아내, 남편 혹은 친구를 죽이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들이 오랫동안 상대방의 고통을 봐 온 사람들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가해자들의 ‘살인’행위를 ‘고통 분담’의 개념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은 “촉탁살인 가해자의 심리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줘야겠다는 의무와 책임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해자는 피해자의 부탁을 행동에 옮길 때 사랑·우정 관계가 유지된다는 착각에 빠진다”며 “범행 이후 이들은 ‘내 행동은 옳았다’는 확신이 (다른 범죄에 비해) 작아지고, 수사·재판과정에서 후회하거나 반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절망적인 삶’ 죽음을 부탁하는 노년층
문제는 죽음을 부탁하는 이중 절반 가량(9건중 4건)이 50대 이상이고, 이들이 대부분 질병이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죽음을 원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특히 자신과 오랫동안 정서적 유대감을 쌓은 사람을 ‘도우미’로 지목했다. 이는 20·30대 촉탁살인 피해자들이 단기간 알고 지내던 인터넷 동호회 회원이나 채팅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 등에게 촉탁살인을 부탁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2008년 우울증에 시달려 온 A(74·여)씨는 퇴행성 관절염으로 거동이 힘든 남편 B(71)씨와 함께 살았다. A씨 부부는 일정한 수입이 없어 궁핍한 생활을 했다. A씨는 자신들이 자식에게 짐이 된다고 여겨 남편에게 “함께 죽자”고 제안했고, B씨도 동의했다. 이들은 A씨가 먼저 둔기로 B씨를 죽인 뒤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순서를 정했다. 남편을 살해한 A씨는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A씨가 범행 후 우울증이 악화돼 남편을 죽인 일을 여생의 고통으로 짊어져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피해자의 “죽여달라”는 부탁에 ‘간병 스트레스’가 더해진 경우다. 2005년 8월 주부 김모(63)씨는 집에서 자살을 시도 중인 남편 박모씨를 발견했다. 척수염으로 하반신 불구 상태였던 박씨는 “약을 먹었는데 죽지 않는다. 죽게 도와달라”고 간청했고, 김씨는 남편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법정에 선 김씨는 ‘(범행 순간) 어려운 형편과 힘든 간병 과정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법원은 30여년 동안 남편을 극진히 보살펴 왔던 점 등을 고려해 김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보살핌의 의무를 여전히 가정에만 전가하는 현실을 반영한 셈이다.
그럼에도 모든 촉탁살인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보험금을 타내려고 사고를 가장한 살인도 있었다. 2003년 전남 나주시의 한 도로에서 운전자 C(54)씨는 아내 D(32)를 치고 달아났다. 빚에 쪼들린 아내가 스스로 죽여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D씨가 사망 전 생명보험 등의 수익자를 C씨로 해 놓은 점을 수상히 여기고 수사를 펼쳤다. 결국 C씨는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김민순 기자 coming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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