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에서 무병장수 전략 찾아야 겨울의 길목이다. 눈도 내려 겨울이 성큼 다가오니 가을 숲이 그리워진다. 그런데 올 단풍은 봄의 꽃처럼 예년에 비해 더욱 아름다웠던 것 같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종족 보존을 위해 곤충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라면 가을의 단풍과 초겨울의 낙엽은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한 식물의 생존전략이다. 단풍에는 색소 항산화물질이 낙엽에는 식물스트레스 호르몬이 중요하게 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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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생명공학 |
단풍의 노란 계통의 색은 카로티노이드계 화합물이고 붉은 계통의 색은 안토시아닌계 화합물이 대부분이다. 식물은 잎에서 광합성을 위해 빛을 흡수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녹색의 클로로필이 주된 역할을 하지만 보조색소로서 카로티노이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광합성을 하는 모든 식물은 카로티노이드를 만드는 것이다. 봄과 여름에는 고농도의 녹색 클로로필에 가려 카로티노이드의 노란 계통 색이 나타나지 않다가, 온도가 낮아지면서 클로로필이 분해돼 잎이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한다. 안토시아닌이 모든 식물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온도가 내려가거나 외부 스트레스를 받으면 식물에서 많이 만들어 진다.
추위가 진전되면 낙엽이 되는데 여기에는 식물호르몬 엡시스산(ABA· abscisic acid)이 관여한다. 추위가 오면 잎자루에 ABA 함량이 급격히 높아져 잎을 떨어뜨린다. 종자가 발달해 건조하게 되면 종자 내 ABA 함량이 증가해 싹이 트지 않도록 휴면하게 한다. 동물로 치면 동면과 같은 혹독한 환경에서 불필요하게 종자에서 싹이 나지 않고 생활하기 좋은 봄을 기다리는 것이다. 온도가 높아지고 싹이 트기 좋은 환경이 되면 종자 내 ABA 함량이 감소하고 발아를 촉진하는 식물호르몬 지베렐린 함량이 증가해 싹이 트면서 종자가 일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ABA는 가뭄, 추위, 고염분 등 외부 환경스트레스에 적응하는 데 중요하게 관여한다. ABA의 대사조절을 통해 환경스트레스에 강한 식물 개발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단풍 색깔에 관여하는 색소 항산화물질인 베타카로틴과 안토시아닌은 식물의 생존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노화와 질병을 예방하는 건강식품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호박, 당근, 황색고구마의 주성분인 카로티노이드계 베타카로틴과 포도, 블루베리, 자색고구마의 주성분인 안토시아닌은 식물의 대표적인 항산화물질이다. 첨단 유전체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약 2만3000개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고 쌀과 감자는 약 3만8000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식물이 생산하는 비타민C, 비타민E를 비롯한 베타카로틴, 안토시아닌과 식물스트레스 호르몬 ABA는 사람이 만들지 못한다. 식물은 열악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안전한 곳으로 쉽게 이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적응하기 위해 항산화물질을 비롯해 생체방어물질을 많이 만들 필요가 있어 동물에 비해 많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최근 국내외 연구자들은 환경스트레스에도 잘 견디고 기능성이 증가된 생명공학식물을 개발하기 위해 비타민C, 베타카로틴, 안토시아닌 등 항산화물질 함량과 ABA 함량이 증가된 식물을 개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베타카로틴을 만들지 못하는 쌀에 베타카로틴을 많이 함유한 ‘황금쌀’이다. 국내 연구진에 의해 베타카로틴과 안토시아닌 모두를 생산하는 고구마와 감자가 개발되고 있다. 이와 같이 식물의 생존전략을 이해해 식물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인류가 당면한 식량, 에너지, 보건 및 환경 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는 식물에서 무병장수 할 수 있는 생존전략을 배워야 할 때며, 이 분야에 대한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생명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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