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0만원 받은 50대, 범행 시인… “죄송합니다” 외치며 흉기 찔러 지난 3월 A건설 경모(59) 사장이 서울 방화동에 위치한 사무실 앞에서 흉기에 수차례 찔린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증거물은 건물 인근 공터에서 발견된 지문 없는 흉기와 범인의 형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폐쇄회로(CC)TV 영상뿐이었다.
경찰은 자칫 미궁에 빠질 뻔한 수사의 실마리를 CCTV에 담긴 범인의 ‘걸음걸이’에서 찾았다. 사건 발생 6개월여 만에 무술 20단의 조선족(중국동포) 김모(50)씨를 검거했다. 경찰이 김씨를 사주한 수원지역 무술단체 이사인 브로커 이모(58)씨와 B건설 이모(54) 사장을 검거함으로써 영화 ‘황해’와 같은 청부살인의 실체가 드러났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15일 경 사장을 살해한 김씨와 이를 교사한 B건설 이 사장, 브로커 이씨 등 3명을 살인교사 및 살인 등 혐의로 구속했다.
참혹한 청부 살인 사건의 발단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사장은 경기 수원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를 위해 A건설과 토지 매입 용역계약을 체결했지만, 매입을 제대로 하지 못해 계약이 파기됐다. 이로 인해 양측은 2009년 12월부터 5년여 총 7건의 민·형사 소송을 주고받았다.
소송으로 A건설에서 받은 5억원을 다시 돌려줄 처지가 된 이 사장은 “2억원을 줄 테니 더 이상 소송을 진행하지 말라. 내가 조직폭력배인데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겠다”며 A건설 소송 담당 직원 홍모(40)씨를 협박했다. 하지만 이씨는 홍씨가 말을 듣지 않고 지난해 7월 또다시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하자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사장은 지난해 9월 30년 넘게 알고 지내던 브로커 이씨에게 “보내버릴 사람이 있으니 작업해 줄 사람을 알아봐 달라”고 제안했다. 수원지역 ‘세계 무에타이·킥복싱 연맹’ 이사를 지내던 이씨는 중국에서 열린 체육 행사 때 알게 된 김씨에게 홍씨 제거를 부탁했다. 2011년 한국에 입국해 직장을 구하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던 김씨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씨는 홍씨가 퇴직한 사실을 알고 ‘표적’을 경 사장으로 바꾸었다.
◆CCTV 속 용의자 ‘안짱다리’가 수사에 실마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 인근에 버려진 흉기를 발견했다. 하지만 가죽장갑을 끼고 범행을 저지른 김씨의 지문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사건 당일 주변에 설치된 CCTV 영상 속 용의자의 모습도 ‘검은 점’에 불과했다. 경찰은 3개월에 걸쳐 120여대의 CCTV를 분석하고 인근 주민 5853명과 경 사장의 지인 1870명에 대해 탐문 수사를 벌였지만 용의자의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경찰은 지난 7월 인근 전화국 앞을 걷는 한 인물의 발목만 녹화된 CCTV 화면을 발견했다. 용의자가 ‘안짱걸음’이라는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의 분석대로 이 영상 속 남성은 양쪽 발가락이 안쪽을 향해 걸었다. 경찰은 이 남성이 같은 장소를 왔다 갔다 한다는 점에 착안, 공중전화나 현금출납기 사용 내역을 뒤져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성공했다.
김씨는 살해 대가로 받기로 한 4000만원 중 3100만원을 받아 생활비 등으로 모두 써버렸다.
김씨는 경 사장을 살인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살인을 교사한 이 사장과 브로커 이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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