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가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 아버지 신드롬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 아버지들은 밤늦게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나 질렀고, 한밤중에 퇴근하고 아침 일찍 출근해 자식들에게는 하숙생쯤으로 비쳐졌다. 신세대 아빠들은 달라졌지만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아빠들도 그렇게 살았다. 이미 정년퇴직이 시작돼 산과 들로 쏟아지고 있다. 61년생은 운이 좋아 간발의 차이로 60세 정년 연장의 혜택을 보게 됐지만 노후가 장밋빛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생전 안 하던 국민연금을 조회해보기도 한다.
2044년 황금연휴가 화제가 됐다. 추석 연휴 때문이다. 10월 1일이 토요일로 시작해 2일은 일요일, 3일 월요일은 개천절에 4·5·6일은 추석 연휴다. 8일은 토요일이고 9일은 일요일이다. 금요일인 7일만 어찌어찌 얼버무리면 자그마치 9일이나 쉴 수 있다. 30년 뒤 꼭 이맘때다. “그때까지는 무조건 살아 있어야겠다”거나 “그날만 보고 산다”고 농반진반 삶의 의욕을 불태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때까지 살지 못한다고 해서 그런 희망 하나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품지 못할 것은 없다.
어쩌다 나가는 모임이 횟수를 거듭할수록 보이지 않는 얼굴들이 늘어간다. ‘형편이 여의치 않은가 보다’하고 미루어 짐작할 뿐인데 ‘그 나이에 직장 다니려면 힘들겠다’는 투로 위로하는 척하며 많이 가진 것을 은근슬쩍 뽐내는 이들이 꼭 있다. 곱게 나이 먹어 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부럽기는 한데 내가 그렇게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훈련이 필요하단다. 가진 것만큼만 먹는 것, 최고의 인생 이모작이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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