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임준철 지음/문학동네/2만원 |
“자연의 변화 따라 죽음으로 돌아가리니, 예순 해 삶 어찌 짧다 하리. 다만 한스럽기는 스승과 벗 잃고, 기록할 만한 선행이 없다는 것뿐. 몸 떠난 넋 흩어져 어디로 갔는가? 바람만이 무덤 앞 나무에서 울부짖겠지. 살아있을 때 나 알아주는 이 없었나니, 날 애달파하며 곡해줄 사람 누구랴. 비록 아내와 자식들 운다고 해도, 컴컴한 저승에서 내 어찌 느끼랴. 귀한 이의 영화도 모를 것이니, 어찌 천한 자의 욕됨을 알리오. 푸른 산 흰 구름 속에, 돌아가 누우니 부족함 없으리.” (최기남 ‘저승이 참으로 내 고향이로다’ 중)
조선시대 문인들이 남긴 ‘자만시’를 모아 우리말로 옮기고 평설한 책이다. ‘자만시’는 시인이 자신의 죽음을 가장하고 스스로를 애도하며 쓴 만시로, 곧 ‘내가 쓰는 나의 장송가’라고 볼 수 있다. 죽음을 통해 삶을 조명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결연한 자의식을 드러내는 것이 자만시의 가장 큰 특징이다.
조선 전기에 사화로 죽음의 위기에 처한 문인들이 남긴 자만시를 비롯해, 현실사회의 왜소함과 부정적 성격에 대한 반면으로서 기능한 자만시, 상장례 과정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시적 자아의 죽음이 두드러지게 표현된 시, 죽음을 먼저 떠난 혈육과 만나는 것으로 상정한 시편들이 전체 5부로 나뉘어 구성돼 있다.
해설 ‘자만시에 대하여’는 자만시의 기원과 양식적 특징, 중국 자만시의 주요 작품과 미적 특질, 자료의 범위와 분류 기준, 조선시대 자만시의 유형, 조선시대 자만시의 전개 양상, 조선시대 자만시의 계보적 특징 등을 책에 실린 자만시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한 글이다. 자만시를 모아 우리말로 옮기고 해설한 책으로는 이 책이 최초가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자만시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