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말에 영화 ‘산타바바라’(감독 조성규)에 출연한 그녀의 의도가 읽혔다. 윤진서(31)는 또래의 동료들과는 ‘같은 듯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배우다.
이제 사랑을 막 시작한 연인의 산타바바라 여행을 그린 이 영화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 된 것도, 관객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오락성이나 상업성을 크게 띄고 있는 것도 아니다. 주연을 맡은 윤진서와 이상윤이 전하는 캐릭터의 개성, 평범한 일상 속 빚어지는 독특한 상황의 재미가 관객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윤진서는 SF나 액션대작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영화계에서 “이런 영화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인 스스로도 어떤 일부 장르에 국한되는 걸 싫어한다는 그는 관객의 취향을 존중하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행을 떠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분으로 이 영화를 촬영했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산타바바라’에는 연인과 서울의 여러 맛집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또 산타바바라를 여행하는 내용이 그려져요. 어디까지나 조성규 감독님이 좋아하는 공간들이라서, 제가 이렇게까지 즐기면서 촬영하게 될지는 몰랐어요. 그렇다고 놀기만 했다는 건 아니에요.(웃음) 영화 속 주인공들은 여행지를 한가롭게 걷고 있지만, 그 장면을 찍는 배우나 스태프들은 얼마나 바쁘게 뛰어다녔는지 몰라요.”
‘산타바바라’는 ‘내게 고백을 하면’(2012) ‘설마 그럴 리가 없어’(2012) 등을 연출한 조성규 감독의 신작으로, 영화 ‘사이드웨이’(감독 알렉산더 페인, 2005)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된 작품이기도 하다. 윤진서 역시 페인 감독의 팬임을 자처했지만, 그 영화 발꿈치만큼도 따라갈 생각은 없었다고 털어놨다.
“영화 ‘사이드웨이’와 우리 영화를 비교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어딜 감히… 하하.(웃음) 지금까지 작품을 해오면서 느끼는 건 ‘100% 만족’이란 없다는 거예요. 다만 찍을 때 과정이 행복하면 좋은 것 같아요. 이번 영화는 특히 매우 즐거웠죠. 그런 해피 바이러스가 영화에도 고스란히 담긴 것 같고요. ‘사이드웨이’와 ‘산타바바라’ 공통점을 굳이 꼽자면, 두 작품 다 공간에 대한 애정, 캐릭터에 대한 디테일이 잘 묻어났다고 해야 할까요. 그건 조성규 감독님의 장기이기도 해요.”

스크린 첫 주연으로 나선 이상윤은 서울대 출신의 ‘엄친아’보다는 귀엽고 수다스러운 오빠 같은 이미지가 더 컸다고 한다.
“영화를 찍고 나서 느낀 건데, 이상윤씨가 젠틀맨에 엄친아(?), 1등 신랑감 이미지가 강하긴 한 것 같아요. 촬영할 때는 감독님과 수다 떨고 놀기 좋아하는 그냥 보통 남자 이미지였는데. 잘 먹고, 잘 웃고, 말도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 그런데 가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함축적인 단어나 뜻이 있는 구어 같은 걸 잘 구사하시더라고요. 똑똑함은 그렇게 묻어났죠.(웃음) 그런데 이런 걸 다 떠나서 이상윤씨는 촬영장에서 뭐 하나 거절하는 법 없이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배려심이나 책임감이 강해서 배울 점이 많았어요. 가끔 연기하다보면 상대 배우가 책임을 회피하고 미루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참 힘들거든요. 상윤씨는 저보다 후배인데도 그런 것 없이 제가 오히려 기대고 싶을 때가 많았죠.”
홍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인디음악가인 정우와의 로맨스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윤진서가 분한 수경은 유명 광고회사 AE지만, 자신보다 책임감 없고 경제적 능력도 별로 없는 정우와 자연스러운 사랑의 감정에 젖어든다. 실제 윤진서는 사랑한다면 상대방의 조건이나 능력 따위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 이상형은 정우처럼 예술가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흔히 말하는 결혼 상대자의 조건을 다 갖췄느냐보다는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느냐에 더 초점을 맞추죠.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도 그렇고… 돈이나 직장에 대한 편견은 없는 것 같아요.”
데뷔작 ‘버스, 정류장’(2001), 그리고 출세작 ‘올드보이’(2003) 이후 10여년이 지난 지금, 윤진서는 주류와 비주류를 아우르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행보를 유지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다음 작품은 강지환과 함께한 감성 누아르 영화 ‘태양을 향해 쏴라’(감독 김태식)라고 하니, 또 다른 변신을 기대해 봐도 좋을 듯싶다.
“배우로서 다양한 작품과 장르에 도전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 듯해요.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요. ‘산타바바라’는 제게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워줬고, 큰 추억을 선물해준 영화예요. 그 느낌을 관객과 함께 많은 상영관에서 공유하고 싶어요. 아, 그리고 포스터 너무 예쁘지 않나요? 색감이나 분위기가 너무 만족스러워서, 처음으로 제 방에서 걸어놓고 싶은 포스터예요.(웃음)”

사진 · 김경호 stillcut@, (주)영화사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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