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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만史설문] 군관민(軍官民) 말에 담긴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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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08 21:03:39 수정 : 2014-07-08 22: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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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이 먼저고 국민은 꼴찌… 권력서열 반영한 군사정권 잔재 ‘군사정권’이라고 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군인이 총을 들고 나서 세상을 뒤집고 대통령이 되거나, 그 대통령 자리를 비교적 손쉽게 물려받은 정권(政權)을 이르는 말이다.

그 후 정부들은 ‘문민(文民)’이라는 낯선 단어까지 들이밀어 군사정권에 대한 거부감을 표했다. ‘문민정부=직업 군인이 아닌 일반 국민이 수립한 정부’라는 ‘국립 국어사전’의 의미심장한 뜻풀이도 실은 그 상처를 지녔겠다. 50대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 상당수가 지니고 있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인가.

제5공화국의 전두환 대통령 부부. 군대가 정치와 사회를 좌지우지한 군사정권 시절에는 ‘군관민’이란 말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군사정권 시절에는 ‘사회 전반’의 의미로 마치 공식처럼 ‘군관민(軍官民)’이란 말을 썼다. “군관민이 힘을 합쳐 수마(水魔)가 할퀸 마을의 이재민을 도웁시다” 하는 식이었다. 젊은 군인들이 삽을 들고 피해 현장의 복구에 나서는 신문의 사진에 으레 실리는 말이었다.

1번 군대(軍隊), 2번 관청(官廳)에 국민(國民)은 3번, 즉 꼴찌였다. 군관민은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했다. 이 우선순위는 일종의 규범이었고, 이 규범을 표시하는 언어는 의당 그 순위를 나타내야 했다. 우스개로 회자되곤 하는 읍내(邑內) 행사의 좌석 순서만 보더라도 부대장, 지서장, 면장, 우체국장 등 철저한 ‘권력서열’ 표시였다.

그 묘한 단어 군관민이 세상 바뀌면서 모습을 감추는가 싶었다. 수재복구 현장 등에서는 그 말 대신 ‘민관군’이 등장했다. ‘암 그렇지, 항시 국민이 먼저지’ 하는 공감이 있었기에 민관군은 군관민을 대신하는 어휘로 굳어지는 것 같았다. 문민정부에 걸맞은 서열이기도 했다. 선거를 거듭 경험하면서 우리 모두가 익힌 민주주의의 영향이기도 했겠고.

세월호 참사, 해양경찰이나 해양수산부와 같은 관청 말고도 헌신적인 해군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특히 큰 위험을 무릅쓰고 그 깊은 바다에서 주검을 모셔 내오는 그들에게 모두 고마움 담은 큰 박수를 보냈다. 언론도 그들의 훌륭한 업적을 기렸다.

세월호 구난의 현장. 군인들까지 관리(공무원), 민간인과 합심하여 가신 이들의 주검을 모셔 내왔다는 얘기를 적으며 ‘군관민’이란 낡은 말이 돌연 등장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런 상황을 전하는 신문과 방송 등의 글에 돌연 등장한 단어가 ‘군관민’이었다. 군인과 관리(官吏·공무원)가 민간인과 함께 안간힘을 썼다는 것이다. 물론 순서가 다른 ‘민관군’ 단어도 있었다. ‘군관민’과 ‘민관군’, 두 단어의 정치적 함의(含意)에 대한 개념이나 구분이 희미해진 한글 세대 젊은 기자들이 현장의 주인공이 되면서 생긴 현상일지라.

또한 ‘권력’이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도 집요하게 이어진다. 스마트폰 시대의 공중전화는, 초라한 대로 그 ‘권력서열’을 유지하려는 ‘상징적 의지’를 드러내는 본보기가 될 수도 있겠다. 혹 눈여겨보신 적 있는지.

숫자버튼 옆에 비상시의 긴급통화 번호가 112, 113, 119의 순서로 적혀 있다. 112는 범죄 신고, 좀 낯선 113은 간첩 신고 번호다. 정작 ‘시민의 번호’인 구급 신고 번호 119는 아래에 깔렸다. 그 순서의 상징성은 간결하다. 이런 집요함이 우리 사회 곳곳 구시대의 잔재(殘滓)들과 함께 꼬질꼬질한 ‘군사문화’의 더께를 오늘의 언론에까지 바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대사 돌이키면, 정권을 따라 국민은 주인이 되기도 하고 ‘졸(卒)’이 되기도 한다. 정치인들, 선거 때 사탕발림인지 항상 그런 마음인지는 헷갈리지만, ‘국민이 최우선’이라고들 한다. 투표권 가진 유권자와 무심코 길거리 지나는 행인은 다른 사람일까? 어쨌든, 최소한 세금을 내는 국민이 진짜 주인이라는 사실은 일반적인 인식으로 굳어져간다.

군관민이란 말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다만 순서가 문제라면, 민관군으로 바꾸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말에도 문제는 있다. 30∼40년 전의 낡은 얘기, 군인(장교) 가족이 관용차(官用車)를 자가용처럼 타고 다니며 특권층 행세를 한다는 기사가 신문에 자주 실렸다. 차가 흔하지 않았던 때, 즉 ‘마이카 시대’ 이전의 얘기다.

관용차는 ‘나라(공공)의 재산’이다. 군인이 용무로 타는 차가 관용차다. 군용차라고 부르지만, 자가용에 대한 개념은 관용차다. 택시가 상업용차인 것과 같은, 관청이 자동차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마찬가지로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직업)군인은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역할을 맡는 관리다. 군인은 공무원 중의 한 직무영역, 즉 직역(職域)의 하나인 것이다.

백성 민(民)자의 옛 글자들. 갑골문에는 이 글자가 없고, 금문에서부터 등장한다. 민중서림 ‘한한대자전’에서 발취했다.
군(軍)을 왜 관(官)과 구분할까? 민(民)과 더불어 군관민 또는 민관군이라는 삼각형을 그려야 하는 이유를 누가 어떻게 설명할까? 우리 국립 국어사전은 ‘[명사] 군대와 관리와 일반 국민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군관민’을 풀이한다. ‘민관군’이란 말은 그 사전에 없다.

말은 변화무쌍한 가운데에도, 항시 본디를 가리켜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르게 선다. 뿌리와 줄기가 튼실해야 하는 것이다. 공자님 정명론(正名論)의 취지다. 시대 상황이나 정치적인 의도 따위로 말이 제 뜻을 벗어나 비뚤어지면 안 된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장 ceo@citinature.com

■사족(蛇足)

시민, 국민, 민주주의 등의 민(民)은 누구인가?

말의 본디, 즉 어원(語源)은 언어의 고고학이면서 태고(太古)의 역사를 짐작하게 하는 실마리다. 동이(東夷)겨레도 섞인 동아시아 옛 사람들이 살았던 황하 유역 문명의 새벽에는 전쟁 포로나 범죄자로 종살이 하는 노예를 부르던 이름의 표기가 뜻밖에도 ‘民’이었다고 한다.

한자의 기원 등을 따지는 문자학이 추정하는 民의 ‘그림’이다. 갑골문 다음 시기인 금문(金文) 시기, 대략 중국 고대 왕조의 하(夏), 상(商 또는 은殷), 주(周)의 흐름에서 상나라 말(末) 또는 주나라 초(初)쯤 생겨난 고대글자인 民은 가슴이 아리는 슬픔을 뿌린다. 노예 신분 표시를 위해 눈에 바늘을 찔렀던 그림(기호 또는 도안)이었던 것이다.

왕족, 무사 등 지배계급과 구분되는 ‘일반 사람’의 이미지로 이 기호의 모양과 뜻은 구르고[전(轉)] 흘러[주(注)] 왔으리라. 바퀴가 구르고 물이 흘러 처음 모양과는 좀 달라졌을지라도 본디는 그 바퀴와 물이 아니겠는가? 문자학 또는 언어학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전주(轉注)라는 용어는 자못 철학적이다.

대략 3000년 전의 그림 또는 기호가 비슷한 모양과 뜻으로 현대에까지 쓰이는 이 경이로움을 인류는 어떻게 설명할까?

오랜 한자의 전통이 이렇게 우리 말글 상당 부분의 속뜻을 짊어지고 있다. 우리의 언어가 다채로우면서 심오(深奧)한 이유다. 말의 본디와 역사성을 부지런히 챙겨야 할 필요성이다. 문리(文理)가 절로 터져서 여러 공부가 밝아지는 비결이기도 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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