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어나고 있는 사건 사고를 보면서 우리 사회는 펭귄 같은 이타주의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펭귄 같은 방법을 거부하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일까란 고뇌 속에 많은 국민이 살고 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어느 중학교 릴레이 육상 팀에 ‘모두’, ‘누군가’, ‘아무나’, ‘아무도’라는 네 선수가 팀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전국육상 경기대회 출전이라는 과제가 생겨 이 네 사람이 회의와 토론을 거쳐 무엇인가를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모두 누군가가 틀림없이 그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를 보고 누군가가 엄청 화를 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일은 모두가 자기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소기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모두는 누군가가 그 일을 하겠거니 생각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맡은 바 소임을 분명히 아는 것이며, 알았으면 그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이다. 위에서 보듯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나 선택을 회피하면 그 피해는 모든 구성원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피해를 줄이면서 공존하기 위해서는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나아가 무엇이든지 상대를 도와주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바탕으로 기꺼이 하겠다는 헌신적인 자세, 잘못된 것을 즉시 고치겠다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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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단국대 정책과학연구 소장 |
우리나라는 산업사회와 지식정보화 사회과정을 거쳐 창조사회로 급속히 진행해오고 있다. 이제 낡은 산업사회의 타성을 버리지 않으면 창의력이 핵심이 되는 내일을 기대할 수가 없다. 향후 우리나라의 사회적 변화는 즐겁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참된 것을 중심으로 한 낙미애진(樂美愛眞)의 사회로 급변할 것이라 한다. 그런 사회로의 이행은 국민이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며 스스로 소임을 다해야 한다.
남의 탓만 하거나 제 할 일은 하지 않고 자기 권리만 주장한다면 나라의 미래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이와는 달리 역지사지 사고 속에 상대를 이해하며 행동하는 국민이 많은 나라가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여기서 얻게 된 분명한 사실은 타성을 버리지 않으면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김성윤 단국대 정책과학연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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