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출장길에 잠시 시간을 내 영국박물관을 처음 찾았다. 박물관에 입장하면서 ‘꼭 한국관을 둘러보리라’ 다짐한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게다. 한국관 관람을 마치고 내친김에 중국관과 일본관까지 살펴봤다. 굳이 세 나라 전시실을 비교하는 ‘오기’를 부려봤다. 결과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한국관이 가장 인기가 없었다. 한국관 방문자는 대부분 영국에 온 한국 관광객인 듯했다. 중국관은 전시실 규모와 관람객 수에서 한국관을 압도했다. 일본관 역시 한국관보다 훨씬 넓고 방문자도 많았다. 속으로 ‘뭐, 예상하지 않았느냐’고 자위했지만 가슴 한편이 답답해짐은 어쩔 수 없었다.
김태훈 문화부 기자 |
그림에 열중하는 여학생을 본 관람객들이 앞다퉈 카메라 단추를 눌렀다. 사람들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도 흘러나왔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여학생은 크레파스만 쓱쓱 움직였다. 도화지 속 사천왕이 본디의 험상궂은 표정 대신 환하게 웃는 얼굴인 것처럼 보였다. 내 눈에만 그랬을까.
“서양에서 한국문학보다 중국·일본의 문학이 더 알려진 건 두 나라를 향한 서양인들의 관심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선 먼저 한국·한국인에 대한 외국인의 호감도부터 높여야 한다.”
런던국제도서전에서 만난 소설가 이문열의 말이다. 호감이든 비호감이든 일단은 조그만 ‘관심’에서 시작한다. ‘첫술에 배 부르랴’라는 속담처럼 한국이 지금 당장 중국·일본을 따라잡기를 바랄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영국박물관 한국관 구석에 앉아 탱화 습작에 정성을 기울이던 그 여학생처럼 한국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이 하나둘 늘수록 한국문화의 세계화 전망도 그만큼 밝아질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한국관을 나서려는데 중동에서 온 듯한 외국인이 나를 불렀다. 전시실 안에 아담하게 지어놓은 전통 한옥 앞에 서 있던 그는 ‘한영실(韓英室)’이란 건물 편액이 나오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며 카메라를 건넸다. ‘찰칵’ 단추를 누르는 소리가 상쾌하게 들렸다.
김태훈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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