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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영국박물관 한국관에서 만난 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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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23 21:44:51 수정 : 2014-04-23 23: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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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인 런던 영국박물관에 한국관이 생긴 건 2000년 11월이다. 지난 1월 91세를 일기로 별세한 한광호 한국삼공 명예회장이 1998년 박물관 측에 기부한 100만파운드(약 17억원)가 한국관의 모태가 됐다. 이곳에서 구석기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250여점의 우리 유물이 세계인과 만나고 있다.

런던 출장길에 잠시 시간을 내 영국박물관을 처음 찾았다. 박물관에 입장하면서 ‘꼭 한국관을 둘러보리라’ 다짐한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게다. 한국관 관람을 마치고 내친김에 중국관과 일본관까지 살펴봤다. 굳이 세 나라 전시실을 비교하는 ‘오기’를 부려봤다. 결과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한국관이 가장 인기가 없었다. 한국관 방문자는 대부분 영국에 온 한국 관광객인 듯했다. 중국관은 전시실 규모와 관람객 수에서 한국관을 압도했다. 일본관 역시 한국관보다 훨씬 넓고 방문자도 많았다. 속으로 ‘뭐, 예상하지 않았느냐’고 자위했지만 가슴 한편이 답답해짐은 어쩔 수 없었다.

김태훈 문화부 기자
어떤 ‘의무감’에 한국관을 쉬 떠나지 못하고 여기저기 거닐다가 이색적인 광경과 마주쳤다. 파란 눈의 외국인 여학생이 불교의 사천왕을 화폭에 옮긴 탱화 앞에 털썩 주저앉아 습작을 하고 있었다. 운동화를 벗어 곁에 가지런히 놓고 한국식 책상다리까지 한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신발 옆에는 온갖 색의 크레파스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여학생은 도화지 위에 빨간색으로 사천왕 자태를 간략히 스케치한 뒤 여러 크레파스를 번갈아 쓰며 탱화 특유의 다채로운 색상을 재현했다.

그림에 열중하는 여학생을 본 관람객들이 앞다퉈 카메라 단추를 눌렀다. 사람들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도 흘러나왔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여학생은 크레파스만 쓱쓱 움직였다. 도화지 속 사천왕이 본디의 험상궂은 표정 대신 환하게 웃는 얼굴인 것처럼 보였다. 내 눈에만 그랬을까.

“서양에서 한국문학보다 중국·일본의 문학이 더 알려진 건 두 나라를 향한 서양인들의 관심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선 먼저 한국·한국인에 대한 외국인의 호감도부터 높여야 한다.”

런던국제도서전에서 만난 소설가 이문열의 말이다. 호감이든 비호감이든 일단은 조그만 ‘관심’에서 시작한다. ‘첫술에 배 부르랴’라는 속담처럼 한국이 지금 당장 중국·일본을 따라잡기를 바랄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영국박물관 한국관 구석에 앉아 탱화 습작에 정성을 기울이던 그 여학생처럼 한국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이 하나둘 늘수록 한국문화의 세계화 전망도 그만큼 밝아질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한국관을 나서려는데 중동에서 온 듯한 외국인이 나를 불렀다. 전시실 안에 아담하게 지어놓은 전통 한옥 앞에 서 있던 그는 ‘한영실(韓英室)’이란 건물 편액이 나오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며 카메라를 건넸다. ‘찰칵’ 단추를 누르는 소리가 상쾌하게 들렸다.

김태훈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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