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요즘 극장가에서는 ‘무서운 아이들’이 화두다.
단순 절도에서 벗어나 살인, 강간, 마약 등 청소년 범죄는 날이 갈수록 흉악해지고 지능화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처벌은 미약하기만 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10일 개봉된 ‘방황하는 칼날’(감독 이정호)과 오는 17일 개봉 예정인 ‘한공주’(감독 이수진)는 내용이나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소년법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특히 두 영화 모두 같은 또래의 남학생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는 여학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사안은 더욱 심각해진다.
‘방황하는 칼날’은 일본의 유명 미스터리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실화는 아니지만, 발간 당시 일본 내에서 소년법에 대한 강한 비판여론을 형성한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배우 정재영이 주연인 아버지 상현 역을 맡았다. 상현의 딸 수진이 학원에서 귀가하던 중 남학생들로부터 납치를 당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버린 딸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현은 좌절한다.
그런 그에게 발신지를 알 수 없는 문자 하나가 도착하고, 상현은 딸을 죽인 남학생들을 찾아 처절한 응징에 나선다.

‘방황하는 칼날’은 피해자의 아버지에서 살인자가 되는 상현의 이야기를 통해 미성년자란 이유만으로 법의 보호처분을 받는 청소년법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묻고 있다.
우리나라 소년법 제59조에 따르면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이 무기형 이상의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15년형, 2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의 경우 단기 3년, 장기 5년형의 부정기 형을 선고 받는다.
이 영화에서 상현의 딸 수진은 남학생들이 먹인 마약에 급성 심부전증을 일으켜 사망했기 때문에 남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살인 혐의를 씌울 수도 없다. 해당 가해자 남학생들은 나쁜 짓을 해도 경미한 처벌만 받는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보는 이들을 더욱 분노케 한다.
‘방황하는 칼날’이 피해자 아버지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봤다면, ‘한공주’는 피해 당사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 영화는 2004년 발생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조금은 반어적인 이름을 가진 주인공 한공주(천우희 분)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또래의 남학생 43명으로부터 상습 성폭행을 당했다. 같은 피해자였던 친구는 자살했고, 그녀는 학교와 시 교육청의 도움(?)을 받아 서울로 전학을 왔다.(실제 사건과 다름)

공주는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결코 녹록지 않다. 이혼한 엄마는 그를 냉대하고. 술꾼인 아빠는 그녀에게 알 수 없는 서류를 들이민다.
더욱 그녀를 힘들게 하는 건 피해 남학생들의 학부모다. 자신의 아들들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인정하기보다는 이를 가리고, 오히려 공주가 먼저 꼬리를 쳤으며 아들의 인생을 망쳐놨다고 윽박지른다.
1년 넘는 공방 끝에 법은 공주의 편을 들어줬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솜방망이 처벌 수준에 불과한 소년법 덕분에 10년이 지난 지금, 실제 가해자들은 좋은 대학에, 좋은 직장에 다니며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실제 피해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아직도 따갑기만 하다.
이처럼 피해자들이 사건이 발생한 후 더욱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불러일으킨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외침은 단발성에 그치기 일쑤. 아직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방황하는 칼날’과 ‘한공주’가 던져준 수많은 질문에 이제는 우리가 대답해야 할 때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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